모든 것에 환상을 품고 살았다
그곳에는 현실만 있었다
대학만 가면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던 나는, 대학교에 가면 놀기만 하는 줄 알았다.
필통도 안 들고 다니고, 수업도 안 듣고 잔디밭에서 모여 막걸리나 마시는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대학교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었다.
실제 20살이 되어보니 내가 가졌던 환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수동적인 공부를 하진 않는 대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토론이나 영어로 말하기를 시켰다. 너무너무 싫었다.
특히 영어수업은 너무 가기 싫어서,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앞으로 몇 번을 더 가야 하는지 횟수를 세고는 했다.
졸업하고 첫회사인 NGO단체에 취업했을 때는 좋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부풀어있었다.
하루에 8시간, 인생의 1/3을 일을 하기에 그것이 나의 삶을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일하니, 사명감은커녕 '앞으로의 내 인생은 이렇게 재미없게 흘러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모든 것에 환상만 품고 살다가 지독한 현실만을 맛보다 보니, 영화도 터무니없는 판타지보다 현실적인 영화가 더 좋아졌다.
적어도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현실에 뒤통수 맞았던 기억은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일들을 기대하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본 마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무언가 기대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무슨 일이든 자신감 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