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신화가 많은 땅이라서 그런 것일까. 제주올레를 찾는 올레꾼을 성비로 따지면 단연 여자가 많다. 사람들이 몇백 명씩 오는 코스 공개행사 때에도 60퍼센트는 넘는 것 같다.
개별적으로 제주올레를 찾아오는 경우는 십중팔구가 여자다. 혼자서, 친구끼리, 이웃끼리, 교회신도끼리, 동창생끼리. 여자들은 다양한 조합으로 올레를 찾는다. 직업이나 연령대도 천차만별이다. 많은 여자가 여자의 길, 제주올레를 찾는다.
-서명숙 지음/<<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291쪽
제주는 여성명사가 아닐까. 독일어나 불어처럼 한글에 남성, 여성명사를 가르는 구분이 있다면 말이다. 제주에는 여성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주를 창조했다는 설문대할망과 풍요를 관장하는 영등할망의 이야기이다.
설문대할망은 키가 엄청나게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또 한발은 현재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관탈섬에 빨래를 놓고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빨래를 문질러 빨았단다.
제주의 360여 개의 많은 오름들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만들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흘러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봉긋한 오름. 놀멍쉬멍(놀며 쉬며), 꼬닥꼬닥(천천히) 오르다보면 금방 정상에 다다른다. 오름에서는 하늘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숨이 차지도 않는다. 우리네 엄마의 품과 같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도에 들어온다. 바닷가를 돌면서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 풍요를 주고 어업과 농업에까지 도움을 준 다음, 2월 2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 신이 찾아오는 2월을 제주에서는 ‘영등달’이라 부르는데, 그래서 여러 마을에서는 이 신을 위하여 영등굿을 벌인다.
설문대할망과 영등할망의 섬, 그리고 해녀들의 섬, 언제나 나를 부른다.
제주 토속어는 노랫소리 같아
제주도에는 제주어를 내세운 간판들이 유난히도 많다. 그만큼 제주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이다. ‘불란디야’(반딧불), ‘하영’(많이), ‘니영나영’(너하고 나하고), ‘허울데기’(긴 머리채), ‘까다쟁이’……
-같은 책/380쪽
2015년 5월에 방영된 <맨도롱 또똣>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내가 제주에 있었던 기간이라 흥미롭게 보았다. 맨도롱 또똣이란 ‘기분 좋게 따뜻한’이란 뜻이다.
지난겨울 올레를 걷고 난 뒤에 후배 오한숙희를 재래시장에 데려갔더니 해물전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결국 옥도미, 갈치, 고등어를 골고루 사서 아이스박스에 포장해서 들고 갔다. 택배도 된다고 말렸지만 택배보다는 자기가 빠르단다. 며칠 뒤 숙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구운 옥도미 발라먹으면서 언니 생각, 올레 생각 하고 있어. 재래시장 프로그램, 아주 좋아. 올레에서 제도화해야 할 것 같아.”
(중략)
어차피 걷는다는 일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행위일진대, 올레 걷기를 끝내고 나면 장보기도 아날로그적으로 해보는 게 어떤가. 같은 돈으로 바구니와 마음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같은 책/333~334쪽
재래시장에 가면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입구에서부터 웅성웅성, 높은 천장에 확성기를 갖다 댄 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생선 비린내와 온갖 먹거리에서 풍기는 냄새,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큰 재래시장으로는 제주민속오일장, 동문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들 수 있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자, 제주에 가거든 마음껏 맛보고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