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반딧불을 담는 일
겹겹이 덧발린 시간은 태산이 된다. 긴 폭포를 따라 하이얀 학과 앳된 사슴, 섬운들이 약연한다. 나는 그곳에서 영원에 내려앉은 선조들을 만난다.
오래된 것은 힘이 있다. 그 힘이란 곧 우리의 선조들이 버드나무 껍질을 하나씩 뜯어먹으며 찾은 아스피린이자, 90세 노인이 손녀의 손을 잡고 남긴 평생의 결혼 생활에 대한 마지막 위트이며, 두 사람을 기대여 사람 인(人)을 만든 무명 씨의 지혜 같은 것들이다.
나는 왜 결혼하였나? 계획하며 살진 않았지만 결혼은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결혼은 느닷없이 내게 들이닥쳤고 내가 그것에 입을 맞춘 이유는 수많은 선조가 그랬다는 것이었다. 물론 몇몇 입술을 덴 조상은 꽤나 진지한 경고들을 내게 보냈다. <A: 금요일에 결혼한 사람은 평생 불행하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 당연히 맞는 말이죠, 금요일이라고 예외겠습니까?>, <A: 고문에 익숙한 것 같군. B: 난 결혼해 봤거든, 2번이나...> 운운.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합리적 의사결정이라 포장된 막연한 낙관에 이끌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이 했고 또 하도록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 단출한 약속과 축하에서 시작된 이 소박한 의식이 인류라는 긴 강을 따라 흘러내려왔다는 것, 그건 분명 결혼이 남는 장사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결혼은 강력한 힘으로 내가 발 디딛던 땅을 모조리 갈아엎었다. 내킬 때마다 밀던 삭발도, 바구니 자전거를 빌려 쏘다니던 밤거리도, 팔리아멘트 하이브리드 원 담뱃갑도, 포도맛 웰치스 캔도, 모두 땅 속 깊이 묻혔다. 그러나 그건 밭뙈기 이야기일 뿐이었다. 두 해 뒤 찾아온 출산은 우주의 운행 방식을 바꾸었다. 세계의 중심이던 나와 천동설은 폐위되고 <해든>이라는 지동설의 태양이 떠올랐다. 오직 <해든>을 공리 삼아 모든 법칙이 재편됐다. 중력처럼 모든 일의 이유와 목적은 태양을 향했다.
태양 아래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처음 보는 햇빛은 눈이 부셨다. 멀어버릴 것 같던 눈이 초점을 찾았다. 동굴 밖은 아름다웠다. 행복이 삶의 지고선이라면, 행복이 내게 왔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나를 사용한다는 것, 어떤 시간 속에 함께-같이 존재한다는 것, 오후 햇볕이 드는 거실 소파 한 편에 나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건네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혼자였을 땐 보이지 않던 충만함과 행복의 향유(香油)는 내 삶 한가운데 따스함의 등불을 켰다. 나는 오래된 것들을 믿기로 했다.
삭고 허물어져가는 사당에는 낙엽과 잡초만 무성하다. 단을 놓고 향을 꽂는다. 선조들에게 예를 올려본다. 세상은 변해간다.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외치며 모든 걸 조각내는 된바람이 불어온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약간의 여유, 가족, 함께하는 소박한 시간, 오래된 가치들은 거센 바람 속에 사그라들고 흩어진다. 피어오르는 향은 바람을 따를 뿐이다.
편지를 쓴다는 건 손가락 두 개로 정히 반딧불을 붙잡아 병에 담는 일이다. 수신인의 의미를 떠올리고 하나뿐인 내 친밀함을 그린다. 4인치 6인치, 엽서 한 장 만큼의 여유를 시간에 새긴다. 바람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반딧불을 담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함은> 을 표현할 것이다. 아주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쓸 것이다.
그리고 보통 어른들의 말은 옳다. 그것이 삶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