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가 살면서 가졌던 네 번의 변곡점
(4) 직장에서 해임되다
나는 1997년 4월부터 청운의 뜻을 품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공무원은 어려운 데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장인어른의 말씀으로 25개 구청 중에 가장 열악하다는 강북구를 선택한다.(전국 수석이니 어디든 지망하시면 보내준다는 시 인사과 담당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강북구청 민방위재난관리과장을 시작으로, 6개월 만에 사회복지과장을 맡고, 2년 뒤 다시 문화공보과장 중책을 맡는 등 구청장님의 신임을 얻고 일을 한다.
그러다 겁도 없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여성 간부 문제 관련하여, 구청장님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으로 직언을 드렸다. 이게 화근이 되어 2001년 4월 6일 나 혼자 시청으로 발령(일방 전출)이 난다.
덕분에(?) 서울시로 와서 재미나게 생활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총 4번의 뜻하지 않는 좌천발령(유배)을 받는다.(이 과정도 재미있을 듯하여 다른 꼭지에서 상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2021년 1월부로 뒤늦게 국장으로 승진한다. 참 기뻤다. ‘이제야 날 알아주는구나! 멋지게 일해봐야지’ 결심한다.
난 조용히 지낼 팔자가 못 되나 보다. 네 번째 변곡점이 또 이때 시작된다. 돈 욕심 부리다가 거액의 사기를 당하고(이 이야기도 조만간 다른 꼭지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더구나 직장에서 해임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난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과 몸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살고 있다. 쓸데없는 오지랖 떨지 않고 겸손하게....
사건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국장 승진해서 민생사법경찰단장으로 발령난다. 다른 시·도는 특별사범경찰단(약칭 특사경)이라 부른다. 그러다가 오세훈 시장님이 보궐선거로 시장으로 오셔서, 곧바로 시장님의 1호 공약을 맡는 1인가구특별대책추진단장으로 발령(내 생애 최초의 영전발령이었음)난다. 나름 열심히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의회의 추경예산 심의를 받는 자리에서 시의원님들과 논쟁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시의회의 요구로 다시 민생사법경찰단장으로 복귀한다. 4번째 좌천발령.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방역수칙 4단계(점심은 4명, 저녁은 2명까지, 밤 10시까지만 영업) 상황에서, 나에게 인사 온 직원들과 총 8인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겁도 없이 나의 권유로) 천방지축이 하늘을 찌를 일이다. 징계를 받아 해임된다. 소청심사위원회에서 겨우 강등으로 복직되어 아예 짤리는 것은 면했다. 천만 다행이다.(이럴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을 하는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북서울 꿈의숲 공원여가과장(사무관 지위, 3급 승진 예정자 신분으로 있다가 소위 꼬리를 떼지 못한 상태에서 징계받음)으로 행복하게 근무하고 있다. 주로 유치원, 어린이집 유아들과 초등학생들에게 숲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소중한 보람을 느낀다.
강등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은 별도로 진행중에 있다.
이제 앞으로 나는 소송결과에 관계없이, 쭉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모습으로 살 거라고 결심한다. 그러다 이 책을 쓰게 된다. 자기반성과 함께 후배들에게 실패한 경험만이 줄 수 있는 조그만 교훈 같은 것을 남기고 싶어서... 성공보다는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발 더 이상의 변곡점이 없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