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공무원 들어와서 힘 들어 하는 분들께 이 글을 권합니다.
내가 이 책의 여러 꼭지들 중에서 가장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즘 세상에선 이 물음에 답하기가 정말 어렵다. 나는 당초 이 책을 계획할 때 공무원은 그래도 사명감과 성취감, 보람 같은 게 있지 않나? 그것으로 살아야 한다고 단순하고 낭만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언론 기사나 자료를 찾아가면서 ‘현실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르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우리 젊은이들 상황과 심정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구나. 그렇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삶이 어렵다. 절박하다. 출구가 잘 안 보인다.
어영부영 공자님 같은 말씀이나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의 형제자매나 아버지 입장이 되어서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정말 최선을 다해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럼에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여유로운 상황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태생적으로 많이 부족할 것이다. 핑계 같지만, 나머지는 후배 여러분들의 몫이다.
먼저 현재의 우리 젊은 공무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5월 무렵 서울시 행정포털 자유게시판에 직원들이 익명으로 올린 글들을 그대로 옮겨본다. 다소 내용이 길지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니 찬찬히 읽어 보자.
《MZ MZ 거리지 말고 월급이나 올려주세요》
저출생이고 뭣이고 신규나 저연차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념이고 정치고 사업이고 한가하게 싸우고 계신 분들이 부러울 뿐이네요
보고만 갔다 하면 사업에 좀 영혼을 담아 봐라 담당자로서 고민해보라고 하는데 200받고 누가 그걸 깊게 고민하나요
중략 -
MZ 조롱할 거면 MZ 월급 받고 조롱하셨음 좋겠습니다
MZ 공무원들 다 자살해서 없어지기 전에...
《결혼을 앞둔 직원인데 한숨만 나오네요》
안녕하세요.
- 중략 -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생각도 많은데..
정말 이 월급 가지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살아갈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네요.
물가는 점점 오르고, 월급은 그에 비해 오르지 않으니..
머릿속이 복잡하니 일이 손에 안잡히네요.
결혼 전부터 돈 이야기 계속 하니.. 더 답답하네요.
《돈도 안 주면서 뭐 자꾸 청렴하라 품위유지 하라는지》
공무원 돈 조금 주는 줄은 알고 들어왔지만
어떻게 몇 년 동안 최저임금 60% 이상 오르는 동안
동 기간 공무원 월급 10%대로 올려놓을 줄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청렴하라니 품위유지하라니 진짜 짜증나네요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결혼도 안 하고 대충 살랍니다.
집안에서 해줄 수 있는 돈도 없고, 한달 30만원 생활비로 산다고 해도 1억 모으는 것도 어렵고
어떻게 결혼합니까?
《현실적인 제재와 대책도 함께 마련해 주십시오》
중략 -
공무원이 꼭 부유하게 살아야 되는 법은 없지만 생계를 걱정하면서 삶의 물음표를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현실적인 제재와 함께 현실적인 대책도 마련해주세요
저희도 가정이 있고, 식구가 있고, 소중한 삶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금도 개박살 났는데, 또 공무원연금 뉴스 나오는거 보니
《승진시 한 호봉 낮아지는 이유는 뭔가요?》
승진하면 한 호봉 낮추어 적용받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건가요?
월급 어떻게든 덜 주려고 하는거 말고 합당한 이유를 대보세요
그리고 이런 제도는 누가 만든 겁니까??
중략 -
그럼 공무원 모두 봉사직으로 바꾸세요. 돈은 왜 줍니까?? 1급 공무원부터 무보수로 일하세요
중략 -
높으신 분들 잘못된 제도 만들어 놓고 나몰라라 하는 짓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말단 공무원 돈 적게주고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청렴합니다》
너무 청렴해서 한 끼 9천원 짜리 순댓국이 부담스러워 도시락 싸들고 다닙니다
재산이 늘어날까 투잡도 못하게 해놔서 월급 이외에 소득이 없습니다.
결혼도 포기 했습니다. 집사는 것도 포기 했습니다.
너무 청렴하지 않나요?
근데 거지같이 살면서 청렴하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네요
이렇게 하루 근근히 살아가는데 무한한 도덕성을 요구하네요.
여기에 이거저거 해라 요구하는 것도 무지 많네요
역시 서울시 말단 공무원은 대단합니다
《앞으로 공무원 선발은 월급 안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돈이 없으면 돈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먹고살기 빠듯한데 겸직도 못하게 해
초과수당 찍는 것도 감시..
중략 -
그나마 받는 월급으론 결혼은 물론 노후준비는 꿈도 못꾸고..
차라리 먹고 살 만한 사람을 앞으로 채용해라.
그러면 먹고살기 빠듯한 말단 공무원에게 청렴청렴 외치는 주접 안 떨어도 된다
하긴 말단 공무원들 먹고 살기 힘들다는거 아니 행여나 뇌물이라도 받을까 말단 걱정되어 청렴청렴 외치겠지..
- 중략 -
거지에게 청렴을 외치기 전에 최소 먹고 살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보장하는게 순서이다.
《초과근무 제한 언제까지 하나요》
보험료 기여금은 오르는데 초과근무는 제한해서 급여가 낮아지고 있어요.
중략 -
미치겠네요 살기 너무 힘들어요 진짜 퇴사가 답인가
《보통 결혼은 언제쯤 하나요?》
현재 남자친구랑 6개월 정도 됐는데요,
남자쪽에서 계속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전 딱히 지금은 생각이 없는데....
보통 6개월이나 1년 정도 만나면 결혼 이야기가 오가나요??
딱 이십 대 중반이라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지금은 생각 없다고 하니, 1년 정도 더 만나면 결혼하자고 강력하게 얘기하네요;;
돈 모아둔 것도 없고 남자 쪽도 아직 2~3년차 직장인인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해도 괜찮을지 고민이네요.
선배님들은 보통 연애를 하고 언제쯤 결혼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현타 온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해외여행도 가고 맛난 거 많이 먹고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들로 꾸며진 알록달록한 삶을 살아가며,
그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그 교류를 통해 더 많은 걸 알아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띄여진다
반면 부모가 돈이 없으면
학자금 대출 갚고 집 마련하기 위해 매달 150씩 적금 붓고
거기에 또 노후보장 되지 않는 부모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매달 2~30씩 용돈을 드리며
하루도 풍족함을 느낄 수 없는 통장을 들락날락하며
해외여행은 커녕 맛난 거 먹지고 못하고 국내여행도 분기별로 가는 것조차 쉽지 않고
초근수당 나오는 것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만 보낸다
하고 싶은 것보다 포기해야 할 게 더 많아 처음엔 놀러가는거, 그 다음엔 입을 거, 그 다음엔 먹을 거, 그 다음엔 만나는 걸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는 나만 바라보며 자꾸만 더 해주길 바라고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만 하며 돈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성비 취미인 TV 시청만 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선순환하는 동기들을 보며
쉼 없이 업데이트되는 동기들의 프로필을 보며
이렇게 마음속으로 또 하나를 포기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겸직 좀 허가해 주세요》
굳이 눈치 보면서 초과 안 할테니까
밖에서 돈 벌게 겸직 좀 허가 해 주세요
배달이든 뭐든 하고 싶습니다
《급양비 9,000원, 초과근무 상한선 100시간》
MZ 공무원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급량비 9,000원 초과근무 상한선 100시간 변경되었다고 기사는 써있던데, 언제부터 적용인가요??
참고로, 아마도 이글을 올린 사람은 그거라도 기대하는 것 같은데, 이 글에 대한 다른 직원들의 댓글은 더 슬프다.
▷ 헐 말도안돼.. 초근 50시간만 해도 몸이 상하는게 느껴지는데와... 말도 안돼
▷ 두어푼 더 얹어줄테니까 닥치고 사무실에서 그냥 코 박고 죽은듯이 일만 하라는 배려.
▷ MZ 이탈 방지가 초과 100 시간에 급량비 9000원 ㅋㅋㅋㅋㅋㅋㅋㅋ
▷ 토악질 나오네 ㅋㅋ 할 말이 없다
▷ 초근수당 기껏해야 시간당 만원인데, 100시간 일하고 100만원 더 받아가라고?
참으로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애절한 절규다. 이 밖에도 업무, 상사·동료간의 조직문화에 적응이 어렵다는 내용의 글도 많다.
다들 결혼 적령기인데, 결혼을 어떻게 하나 걱정, 결혼을 해도 걱정, 안해도 걱정, 결혼해서 아이를 안 낳아도 걱정, 낳아도 걱정, 삶이 걱정투성이다.
얼마나 힘이 들면, 견디기 어려우면, 앞이 캄캄하고 미래가 안 보이면, 아무리 익명이라 해도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하소연하겠는가?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현재 우리 조직의 꿈 많은 젊은이들 다수가 이런 심정일까? 대부분일까? 아니면 절대 다수는 아니고, 일부일까? 필자는 이미 50대 후반이고, 그 동안은 이렇게 젊은 직원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직접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보면 분명히 소수만 이렇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마음으로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주요 관심사는 일단 돈이다. 월급이다.
머니머니 해도 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