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례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우리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지금 서울시 북부공원여가센터 공원여가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북부공원여가센터는 말 그대로 서울 북부 지역에 있는 공원 5곳(북서울꿈의숲, 중랑캠핑숲, 경춘선 숲길 공원, 창포원, 간데매 공원)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조직이다. 나는 거기서 공원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연, 행사, 프로그램 등 시민들이 공원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여가 등 소프트웨어를 책임지고 있다.
그중에 상시적으로 중요한 업무는 숲 해설(유아 숲 포함)과 역사·문화해설 프로그램 운영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이들, 그리고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원의 숲과 자연(나무와 풀, 새, 곤충 등) 그리고 역사·문화에 대해서 숲해설사, 문화해설사 등 전문가가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참고로 기간제 선생님은 주중에, 프로그램 강사 선생님들은 주로 주말 일정시간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실제 진행 절차는 이렇다. 먼저 전문가분들이 다음 한 달 동안 각자가 진행할 프로그램 내용과 일정을 우리 사무실에 알려준다. 사무실에서는 이 내용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 공공예약 서비스」 시스템에 올린다. 시민들은 이것을 보고 아이들과 같이 참여하겠다고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남긴다. 보통 한 번 프로그램에 15명에서 20명까지 신청을 받는데, 대부분 올리자마자 선착순으로 마감된다. 그만큼 부모님들께서 아이들과 같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실제로 프로그램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되는 데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하고 부모님들도 아이들과 함께 뜻있는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 부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작년에 비해 대폭 늘렸다. 강사님들도 작년 네 분에서 올해는 일곱 분으로 늘려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 참여하는 아이들 표정이 참으로 해맑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렇게 재미나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여름철엔 괴롭다. 비와 폭염으로 취소되기 일쑤다. 특히 비 예보로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부모님 그리고 프로그램 선생님 모두 아쉬워한다.
그래서 우리 과는 프로그램 선생님과 아이들 부모님께 미리 “왠만한 비에는 당초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다만 비가 많이 오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사전에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안내 문자를 드립니다”라고 공지하여, 가급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쪽으로 하였다.
적극행정 사건은 이런 연유로 시작되었다.
지난 2024년 7월 첫 주는 내내 비가 왔다.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이었다. 평소에는 비 예보가 있으면 전날 취소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때는 며칠째 계속 비가 왔고, 그 전주부터 첫 주 내내 일요일까지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였다. 할 수 없이 미리 수요일에 그 주 토·일요일에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비 예보로 전부 취소하기로 하고, 선생님과 예약하신 부모님들께 문자로 안내하였다. 미리미리 주말계획에 참고하시라는 예측행정 차원에서....
그런데 문제는 금요일 오후에 이 예보가 바뀌었다. 토요일은 예정대로 비가 오는데, 일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안 오는 것으로 예보가 바뀐 것이다. 기후변화로 하늘도 예정대로 가지 않고, 그때 그때 달라진 것이다. 또한 작은 문제지만 마침 이 프로그램 운영 담당자인 구 ♡♡ 주임이 여름휴가 중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우리 사무실은 총 3명이다. 과장인 나와 프로그램 담당인 구♡♡ 주무관 그리고 다른 공연, 행사, 홍보 등을 담당하는 이♡♡ 주무관 셋이다. 사실 이 두 분은 서울시 입사 동기로 입직한 지 각각 4개월과 8개월 차에 불과한 새내기 공무원이다. 특히 이♡♡ 주무관은 우리과로 전입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이♡♡ 주무관이 갑자기 나선다. “과장님 일요일은 비가 안 오는 것으로 예보가 바뀌었는데 우리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지”라고 답했다.
이♡♡ 주무관은 먼저 프로그램 선생님들에게 연락하여 비가 안오니 프로그램을 당초대로 진행하실 수 있는 분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하실 수 있는 선생님 수업에 공공예약서비스 시스템에서 예약하신 분들을 찾아 연락하기로 한다. 대직자에 불과하니 자기 일도 아닌데....
예약자를 자기는 알 수 없으니, 카톡으로 일본 여행중인 구♡♡ 주무관에게 “여행중인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자 명단을 알 수 있는지를 묻는다. 당연히 구♡♡ 주무관은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이♡♡ 주무관은 시스템에서 찾은 예약자분들께 한분 한분 전화를 드려, 프로그램을 하실 수 있으니 참여하시겠는지 의향을 묻는다. 해서 결국 두 곳 공원에서 네 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그리고 부모님들은 화창하게 갠 날씨만큼이나 환한 얼굴로 참여하여 그 시간을 함께 즐겼다. 그리고 비 때문에 프로그램이 취소되어 매우 서운했었는데, 다시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선생님들도 이런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부모님들의 반응에 신이 나셨다.
이렇게 해서 비 때문에 취소되었던 프로그램이 부활하여 우리 역사에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런 것이 적극 행정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원래 비 예보가 있었고, 장마철이니 우리 쪽이나 아이들 부모님들이나 프로그램이 취소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일요일에 날씨가 화창하여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잘못했다고 비난하거나 항의하실 분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허나, 우리의 이♡♡ 주무관은 우리 부서에 온 지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익한지를 알기에 그 한 번이라도 놓치는게 아쉬웠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더구나 자기 일도 아닌데, 단순히 대직자로 되어 있는데도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결국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은 웬만한 정성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결혼도 안 했는데 지가 아이 사랑을 알어?) 휴가로 여행 중 임에도 자세히 방법을 가르쳐 준 구♡♡ 주무관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적극 행정은 다른 게 아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우리가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에 관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본다면, 그 절차나 결과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더 간편하게 합리적으로 그리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이다. 그럴려면, 개인적으로 호기심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안도현의 시 「연탄재」는 이렇게 말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주무관과 구♡♡ 주무관은 「연탄재」다.
P.S. 아래 사진은 그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선생님들이 보내 주신 사진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라. 얼마나 해맑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