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리 Oct 24. 2024

‘나’랑 놀아볼까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가요?


한 순간에 부자가 되었다. 시간 부자.

빠빠바빰빠-뚝. 원래 기상 알람은 세-네 개는 기본으로 설정하는 게 오래된 루틴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차라리 기상 시간에 맞춰 딱 하나 맞춰두는 게 수면의 질을 올리지 않겠냐며 냉철한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나는 실제 일어나는 시간보다 30분 일찍, 10분 단위로, 알람벨은 다양하게 맞춰 놓고 몇차례 알람 끄기를 반복한 뒤에야 겨우 일어나는 몸이었다. 아침마다 전쟁 치르듯 10분 컷 샤워를 하고 눈에 보이는 옷을 허겁지겁 주워 입었던 K직장인이여 이제 안-녕.


직장인의 쉼표를 찍고 휴직러의 삶을 살아보니 가장 크게 다가왔던 건 ‘시간’이었다. 일단 알람조차 맞출 필요가 없다.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면 그만이니까. 자연스러운 나의 생체 리듬에 따라 눈을 떠도 시간은 여전히 많다. 당장 가야 할 직장도, 해야 할 일도 없다니! 여기가 지상낙원이구나. 그렇게 밍기적밍기적 눈을 뜨고 하릴없이 시선이 향한 곳은 차창밖 풍경이었다.


여유롭게 눈을 뜨고 내다본 차창밖 풍경


매일 아침마다 커튼을 열고 오늘의 하늘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움직이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아침 풍경을 이렇게 소중하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직장인일 때는 보이지 않던 싱그러운 광경이었다. 한참을 보고 있다 보면 곧이어 떠오르는 생각 ‘오늘 뭐 하지?’


남편은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일찌감치 출근을 한다. 보살펴야 할 아이도 없다. (아이를 갖고 싶어 휴직했지만 지금은 자녀가 없는 자유의 몸.) 30대 친구들은 모두 근로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 친정집은 꽤나 멀리 있다. 결국 내게 남은건… ‘나’뿐이네!


휴직과 동시에 서서히 친구들과 멀어졌다. 습관처럼 하던 SNS도 끊었다. 남들은 모두 앞을 향해 달려가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과감히 지웠다. 당시 내가 느꼈던 바가 참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침 풍경을 달콤히 즐기다가도 SNS에 들어가기만 하면 비교의 굴레에 빠진다는 걸 알아차렸다. ‘삭제’ 버튼 하나로 손쉽게 헤어 나오다니,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였다.


분산되었던 시선이 점차 나에게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마주하는 상대는 나다. 싱긋^_^ 나를 향해 웃는다. 오늘 무얼 먹을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란 사람은 참 일관되지 않은 친구였다. 때로는 하루 종일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도, 때로는 말괄량이 소녀처럼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골목을 누빈다.



혼자 산책하다 발견한 예쁨들


매일 지나치던 골목길도 여럿이 아닌, 혼자 걷다 보면 다르게 보인다. 돋아나는 새순이 아름답고 떨어지는 꽃잎이 아련하다. 우연히 우러러본 하늘, 옥상에서 마중 나온 해바라기가 인사한다. 나란 인간, 아니 너란 친구는 작은 것들로부터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구나.


그럼 이번엔 혼자 하는 데이트는 어떠한가. 한강 자전거 라이딩, 백화점 구경, 미술관, 도서관 탐방, 영화 감상, 등산, 찜질방, 맛집 등등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하던 것을 혼자 하면 재미있을까? YES! 나랑 노는 것도 나름 괜찮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나랑 놀다 보면 나라는 녀석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셀프 칭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허허


상대방에게 맞추고 적절히 조율하는 타인과의 데이트는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 나는 나랑 노는 것도 좋다. 나랑 친해질수록 나는 무얼 할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어떨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피부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먼저 찾는다는 점이다.


‘너 지금 기분 나쁘구나..맞아 기분 나쁠 수 있어.’

‘너 00이가 부러워서 그런 거지..?

그렇네. 부러웠네 ‘


자기 대화. 나와 대화한다는 게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형태는 다양하다. 나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마음속 대화가 오가기도 하고,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서 한 두 마디씩 건네기도 한다. 아!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 행한다는 것. 자꾸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물론 남에게 기댈 때도 있지만 나 홀로 한 겹 벗겨내고 만나면 훨씬 가벼워진다.


“너 요즘 인스타를 안 하니까 어떻게 지내는지를 통 모르겠어. 잘 지내?“

“나? 잘 지내지! (나랑)“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간혹 묻는다.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졌다 또 가까워지는 유동적인 사이. 나와의 관계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 나는 나랑 잘 지내고 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혹은 삶의 또 다른 전환점에선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요즘 나의 베스트프렌드는 바로 나다!


작가의 이전글 감자채볶음이 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