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
한때 채식주의자였던 고등학생
고등학생 때 몇 개월간 채식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 중이던 아빠와 많은 이야길르 나누고 관련된 글과 영상들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레 시도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채식이 건강에 미치는 이점을 찾기 위해 시작한 정보에 대한 디깅은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 동물보호와 환경보호 쪽으로도 흘러갔다. 채식을 실천하는 이유와 방식이 다양했고 그와 관련된 정보도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는 않았다. 환경운동가 앨고어가 기후이야기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이 2007년이니, 한국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훨씬 후였을 것이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급식 때 나오는 고기 대신 집에서 가져온 두부 반찬을 먹는 내가 친구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는지, 옆 반 아이들이 내 점심식사를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다. 또래 문화가 전부였던 나에게 다름을 바탕으로 한 호기심의 시선은 꽤 견디기 어려웠고, 결국 채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건강상의 이유였지만 어쨌든 처음 접하게 된 비거니즘은 그 후로도 무의식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나에게 확 와닿지 않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이따금씩 머릿속에 떠올라 기사를 찾아보게 만들다가도 금세 가라앉아버렸다.
코로나 19와 여름철 폭염의 공통점
다시 지속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 서다. 집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점차 무뎌지다가 나중에는 억울하고 화가 났다. 우습게도 그저 살아갈 뿐인 박쥐를 원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2021년 코로나의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연구 결과를 담은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박쥐를 원망하는데 급급하기만 했지 그 너머의 근본적인 원인은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코로나는 기후변화로 인해 박쥐 서식지가 변하면서 사람과의 접촉이 늘어나 생긴 결과라는 내용이었다. 코로나의 원인은 오랫동안 증가해 온 온실가스 배출이었던 것이다. 나는 원인 제공자라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1년 후 2022년, 끝없는 폭염이 지속되던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더위에 약한 체질이기에 녹아내리는 고무처럼 흐물흐물한 마음으로 한 계절을 보냈다. 이런 폭염의 원인이 궁금해진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미디어들은 하나 같이 기후변화/기후재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는 기후변화를 혹은 기후변화로 기인된 변화를 체감하는 일들이 일상이 된 것이다.
경영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가 2020년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윤리적인 구매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지금은 어떨까? 유명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 컴퍼니가 2024년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는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며, 2년전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염려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한번 알게 된 지구의 변화는 나의 삶을 조금씩 바꾸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하고 그 소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혀 거창하고 극적인 이야기도 없이, 천천히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속가능성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격하지 못한 플렉시테리언(채식을 지향하지만 때때로 육류나 해산물을 먹는 채식주의자)이고, 손수건 대신 휴지를 사용할 때도 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천은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한 것이 실천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좋은 이야기와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지만 때때로 서로를 챙기지 못하거나 논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 본질을 해치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가능성을 실천하지 못할 때보다 실천할 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지 못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리하기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