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개 재료와 조리 방법이 들어간다. 어쩌면 당연하다.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가가 요리에 대한 핵심 정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야채, (물)고기, 과일 등을 넣어 구웠는지, 볶았는지, 쪘는지, 삶았는지 등을 요리 이름에 넣어 먹는 사람의 예측과 선택을 돕고 기대를 자아낸다.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요리 중 '들기름에 구운 무와 굴 조림'(제4화, 최강록) 또는 '산낙지 튀김 덮밥'(제4화, 장호준)이 대표적이다. 음식에 지명을 넣어서 지역색을 강조하기도 한다. '통영식 비빔밥'(제2화, 장사천재 조사장)이나 '제주 장 트리오'(제4화, 원투쓰리)가 그러하다.
이 외에도 <흑백요리사>에서는 요리의 이름을 형태적 유사성에 근거한 비유적 표현으로 만든 사례가 등장한다. '동파 눈꽃 만두'(제1화, 중식여신)는 찐만두를 전분 위에 얹어 구운 형태를 눈꽃에 비유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중국 요리인 '송서계어(松鼠桂魚)'(제10화, 정지선)는 통생선을 '송서', 즉 다람쥐 모양으로 튀겨낸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때로는 음식 이름을 통해 요리사의 장점을 스스로 부각시킨 사례도 있다. '황금비율 마파두부'(제2화, 간귀)는 간을 귀신같이 맞춘다는 요리사의 별명과 같은 맥락에서 간을 '황금비율'로 맞췄다는 설명을 이름에 담았다. '진짜 비빔밥'(제2화, 비빔대왕)은 '비빔대왕'이 별명에 담긴 자부심에 걸맞게 자신의 비빔밥만이 '진짜'라는 주장을 담은 이름이다. 팀 미션 중 안유성 요리사가 선보인 '대통령 명장 텐동'(제9화)은 '대통령'과 '명장' 타이틀이라는 권위를 끌어와 음식의 격을 높이려 한 경우다.
한편 '담백한 바다장어'(제5화, 조셉 리저우드)와 같이 제목에 음식의 맛을 넣은 경우는 어떨까? 매운맛을 강조한 요리 제목의 경우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에게 요리에 대한 핵심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담백한' 요리를 못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먹는 자가 느끼게 될 맛에 대한 느낌과 의도를 요리사가 요리 이름에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작명과는 거리가 있다.
예술작품에 붙이는 요리 이름을 '제목'으로 볼 수 있을까? 좋은 이름 내지 제목은 무엇일까? 책이나 예술작품의 제목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내용을 충실하게 포착해서 독자나 관객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제목, 반어적인 제목, 그리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대다수의 제목이 첫 번째 범주에 들어가는데, 특히 이름이나 사건 등 고유명사가 들어간 제목들이 대표적이다.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제인 에어(Jane Eyre)>는 제인 에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박태균의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은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과 주장을 담은 책이다.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반어적인 제목으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들 수 있다. 전자는 한 인력거꾼의 지독히 불운했던 하루를 그렸고 후자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어법을 대표하는 제목들이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제목은 세 번째 부류, 즉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들이다. 이때 책을 읽는 행위는 제목이 던진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탐색의 여정이 된다. 이를테면, 만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탁월한 개론서이자 만화책인 <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는 '보이지 않는 예술(The Invisible Art)'을 부제로 달고 있다. 만화는 눈으로 보는 단일감각 시각예술인데 왜 '보이지 않는 예술'이라는 말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적극적으로 독자를 책으로 초대하여 홈통, 만화적 기호와 같이 만화가 다른 시각예술과 차별화되는 지점에 대한 입체적 이해와 새로운 발견으로 독자를 이끈다.
미술의 경우, 이야기와 형상을 담은 그림들은 흔히 작품의 소재나 주제를 제목에 담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다룬 첫 번째 부류의 제목으로, 관객에게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사건은 '수태고지(The Annunciation)'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가들이 그린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이 남아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나 '천칭을 들고 있는 여인(Woman Holding a Balance)'은 작품의 소재를 제목으로 삼은 경우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개념미술과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흐름이 나타나며 작품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을 도발하는 제목이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기성품으로서의 작품과 예술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작품인 '인간의 조건(The Human Codition)' 시리즈는 현실과 재현된 현실, 인식과 실재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샘'이나 '인간의 조건'은 위에서 다룬 세 번째 부류의 제목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데에서 나아가 때로는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회화나 조각에서 재현적 형상이 사라지자 제목 역시 있는 그대로의 물성을 자기지시적으로 설명하는 작품들이 나온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 중 '오렌지와 노랑(Orange and Yellow)'이나 '짙은 빨강 위 검정(Black in Deep Red)', 또는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의 '여덟 개의 검은 점(Eight Black Dots)'과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주제나 소재, 개념을 일체 배제하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의 오브제로 대면하게 하는 제목들이다. 현대미술에서 많은 추상 회화와 조각 작품은 아예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작품에서 언어로 된 라벨을 떼어버리겠다는 작가의 의지다.
요리 이름은 대개 재료와 조리법을 담는다는 점에서 물성에 대한 자기지시적 설명에 해당한다. 그러나 <흑백요리사>에서 어떤 요리의 이름은 물성의 차원을 훅 뛰어넘는다. 위의 세 번째 부류, 이름이 음식과 만나 호기심의 상승기류를 일으키는 경우다. '만찢남'은 자신이 만든 동파육과 게살 춘권 앞에 각각 '<맛의 달인> 2권 25페이지'나 '<철냄비짱> 8권 19페이지'와 같이 만화책의 제목과 함께 권수와 쪽번호를 밝혔다. 그 음식을 하는 데 영감을 준 출처를 성실하게 밝힌 데에 그치지 않고, 만찢남이 스스로 요리를 독학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임을 부각시키는 이름들이다.
'셀럽의 셰프'가 만든 '베지테리언 사시미'는 형용모순(oxymoron)에 속한다. 회를 뜻하는 '사시미' 앞에 채식을 뜻하는 '베지테리언'이라는 단어를 붙여 의미상 모순을 일으킨 수사법이다. 야채를 재료 삼아 사시미같이 선보인 요리를 지켜보던 최현석 셰프는 오도로(참치 뱃살)처럼 기름 맛이 약한 비트와 지방이 있는 아보카드를 같이 먹도록 한 조합이 영리하다며 찬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때 형용모순이라는 수사법은 야채 요리의 한계를 확장시킨 의의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에드워드 리는 최종 라운드에서 떡볶이를 재해석해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인 세미프레도 디저트를 만들었다. 한국 음식은 푸짐해서 떡볶이 두세 개를 남기는 것이 늘 아까웠는데 이것이 바로 "풍족함과 사랑,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추장을 변주한 소스 위에 얹힌 떡볶이 모양의 아이스크림 이름은 '나머지 떡볶이 디저트'이다.* 한국에서 '떡볶이'가 '디저트'일 리 없는 형용모순의 긴장감은 '나머지'라는 수식어구와 만나 시적으로 비약한다. 이민 2세대 요리사가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 어린 해석을 담은 '나머지'라는 단어 덕분에 한낱 요리 '이름'은 '제목'이 되었다.
* 에드워드 리는 '떡볶이 나머지 디저트'라고 말했는데, 제작진이 한국어 어법을 고려하여 순서를 바꾼 듯하다. 에드워드 리는 한 팟캐스트에서 본인의 한국어가 '(술 취한)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실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팟캐스트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1D4yyQp9r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