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의 힘
12월은 면접의 계절이다. 서류 합격 발표와 동시에 보통은 익일 면접이 잡힌다.
지난주에도 면접 하루 전 면접 통지를 받고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내가 책놀이 강사로 지원하게 된 동기는 뭐지?
스스로 질문하다 내가 왜 독서교육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까지 이르렀다.
나는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나이차이가 꽤 나는 큰언니의 딸, 우리 집안의 첫 조카 햇살 같은 예서는 어느새 친정 가족의 중심에 있었고 친정식구들 모두 예서바라기를 자처하는 공동육아전담사였다.
언니는 넉넉지 않던 형편에도 조카를 영유에 보냈고 집 앞 국립 초등학교를 두고도 매일 등하교 라이드를 해야 하는 대학부설초에 보냈다. 입시시즌엔 차로 1시간이 걸리는 학군지 학원에 라이드 하며 교육에 열을 올리던 언니의 교육방식을 반면교사 삼아 자연스럽게 교육에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겠노라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그러다 만난 교육방식이 독서교육이다.
독서 교육은 최고의 가성비 교육이다.
우선 큰 아이는 책을 정말 좋아해서 쉬는 시간이면 책을 집어드는 아이로 자랐다.
영유아기 때부터 책을 종일 붙들고 읽어줬던 습관이 자리 잡으며 글을 읽지 못할 때에도 줄곧 혼자서 책을 보던 아이였다. 읽는 아이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읽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는 아이로 자란 덕인지 아이는 초등시절까지는 공부를 신경 쓰지 않아도 학교 공부를 그럭저럭 따라갔다.
영유아기, 초등 저학년까지만 해도 책을 읽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학원 숙제에 쫓겨 더 이상 읽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새겨들어 학원보다는 독서를 중점으로 두고 아이를 키웠다. 독서 취향이 확실한 아이라 편독이 심한 편이라 걱정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엄마가 독서를 하다 보니 나에게도 독서 취향이란 것이 생겼고 취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서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언젠가는 무엇이 계기가 되어 아이의 독서 세계가 확장될 것을 믿기에 지금도 기다려주며 읽는 아이를 존중한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이던 어는 날, 저녁 식사 중 아이는 오늘 영어 단어 시험에서 0점을 받았다며 하소연했다. 아무리 초3 때 교과에 영어 과목이 생겼지만 영어공부를 해보지 않았기에 당연한 점수였다. 아이에게 따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 잘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영어를 좀 배워 보겠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배워야겠다고 답해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처음에 영어를 늦게 시작한 아이를 우려하며 차근차근해보자고 하셨지만 두 달 만에 놀랍게 흡수하는 아이를 보곤 신기해하셨다. 뒤늦게 접한 잠수네 영어공부 책을 읽고 영어도 책 읽기가 답이 되지 않겠나 싶어 선생님과 3개월 수업을 끝으로 4학년부터 영어 책 읽기를 시작했다. 한글책 읽기 수준이 높았던 만큼 영어책 읽기에도 속도가 붙었다. 물론 어릴 때 시작한 다른 아이들만큼의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단련된 독서력은 영어 독서에도 가속을 붙여주었다. 비록 아이의 영어책 읽기는 4~6학년까지만 이어졌고 사춘기를 핑계로 공부를 놔버린 현실은 안타깝지만 3년 영어책 읽기의 힘은 중학교 영어 내신까지는 어찌어찌 커버가 가능했다.
모든 공부가 초등 6년까지로 멈췄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는데 초등 3학년부터 시작한 기본서 수학예습, 유형서 수학복습의 루틴도 중학교에 가선 멈춰졌다. 중1은 자유학기제로 시험이 없다 보니 초등까지 단원평가에서 받던 점수가 자신의 수학성적이라 여겼던 것 같다. 6학년때까지는 막힘없이 해오던 수학공부가 중1에 올라오면서 점점 어려워졌지만 점수로 증명되지 않으니 외면해 온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조금씩 꾸준히 해오던 공부 루틴이 완전히 무너졌다. 온순한 아이가 자기주장을 펴며 집공부를 거부하기 시작할 때쯔음 내가 아이에게 하게끔 시키던 매일 공부루틴은 겉으로는 자기 주도 혼공을 가장한 엄마주도 집공부였던 것을 깨닫게 되며 한발 물러서 아이의 공부에 주도성을 넘기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아이는 공부하지 않았다. 책만 꾸준히 읽었다. 중2, 3학년 1학기 기말까지 수학 성적이 50~60점 대를 오가며 드디어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다.
수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친구들이 있으면 질문을 못할 것 같으니 과외를 해보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주변의 정보를 입수해 개별진도로 봐주시는 수학학원에 테스트를 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중1 과정부터 시작해서 메워가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올해 6월부터 첫 공부학원인 수학학원을 주 2회 다니게 되었다. 부지런히 달린 끝에 11월 기말에는 현행진도가 딱 맞아떨어지는 시점이 찾아왔고 이번 기말에서는 다행히도 90점대 수학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수학학원 원장님은 6개월 만에 3년 과정을 훑은 일이 적지 않은 성취라며 칭찬하셨다.
고등학교 선배맘들은 중등까지의 점수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야기한다. 나도 주변의 사례를 많이 접했기에 우리 아이에게 핑크빛 미래가 있음을 기대하지많은 않는다.
선배맘들에게 중3 자녀의 성취를 적는 것, 게다가 대단히 잘하는 아이가 아닌 아주 평범한 학생의 사례를 늘어놓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아이가 짧은 시간 노력대비 보이는 성취의 원동력은 '독서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엄마 아빠 모두 대단한 두 되는 타고나진 않은 평범한 사람들임을 감안할 때 아이에게 가장 큰 무기는 16년간 쌓아온 집중력 있는 독서력이라고 생각된다. 태권도 주 3회, 수학학원 주 2회 이외에 평일 티브이와 휴대폰이 제한되다 보니 지금도 집에 와선 뒹굴거리다 책을 집을 든다.
이렇게 독서는 국어뿐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및 전 과목 모든 학습의 근본이 되는 이해력과 문해력에 도움을 주어 학습력을 높여주었다.
그런데 학습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억지로 욱여넣는 독서는 행복하지 못한 결말을 야기할 수 있다.
독서가 문해력에 중요한 키가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면 엄마라면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 중요성을 누구나 아는바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하는 환경에 놓이다 보면 특히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반항심리가 작동해 책 읽기에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이라면 읽고 쓰는 삶이 내면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잘 아는 경험자들이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듯이 아이들도 독서가 주는 즐거움, 유익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독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하교한 아이한테 물었다.
" 엄마는 책이 학습에도 유익하지만 정서적으로도 아주 유익하다고 느끼거든? 네 생각은 어때?"
" 어, 맞아. 책은 재미있어. 그냥 책을 읽으면 시간이 진짜 빨리 지나가고 재밌어."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공감하는 것에서 출발해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통해 책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가져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수많은 인물과 만난 독자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길러진다.
김창옥 교수님은 한 쇼에서 300여 명의 관객에게 질문했다.
" 내가 자라온 환경이 부모님도 좋으셨고 형편도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손을 들어봐 주실래요? 했더니 단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수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대부분은 어릴 때 자라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이기도 하다.
독서교육을 하면서 다양한 어린이들을 만나게 된다.
저학년 아이들은 그림책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이야기 꺼내 놓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시는지,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어떤 행동을 하시는지 등의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많은 친구들 중 유독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의도치 않게 아이들의 가정의 소소한 사정들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이 부디 그림책 수업을 통해 내면이 조금씩 단단해져 가길..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순간 믿을만한 어른으로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면이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 내년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초심을 일깨우는 시간이 어쩌면 나에겐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어떤 아이들과 만나게 될까? 꼭 필요한 곳에 내가 있게 되길 기도하며 오늘도 자기소개의 한 줄을 작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