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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지프 Dec 04. 2024

어린 왕자와 여우

 특별한 관계를 맺는 법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중

어린 왕자에서 지구의 수천만 송이의 장미꽃을 보고 자신의 별에 있던 장미꽃을 회상하여 슬퍼한다.
슬퍼하던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게 되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다'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 준다.그리고, 이어서 여우는 말했다.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줄래?"


"나도 그러고 싶어. 그렇지만 난 시간이 별로 없어. 난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고 또 많은 것들을 알고 싶거든."

왕자가 말했다


"무언가를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걸 정말로 알 수는 없어. 사람은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만 정말로 알 뿐이야.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진정으로 알게 될 시간이 없어졌어. 가게에 가서 이미 다 만들어진 물건들을 살 뿐이거든,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가 없는 거야. 만일 네가 친구를 얻기 바란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하면 되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인내심이 있어야 돼. 처음에는 내게서 조금 떨어져서 앉는 거야...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 앉을 수 있게 될 거야.."




2주 전, 대학교 선배 두 분과 오랜만에 술 한잔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대학동아리는 정기행사를 통해서 선/후배를 만날 기회가 종종 있지만, 나는 최근 행사에 참여를 하지 못해서 오랜만에 소수정예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동아리 정기행사에서 단체로 모이는 경우에는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 과거 대학 시절의 동아리 에피소드지만, 소수모임은 좀 더 개인적이고 시점도 현재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함께 자리한 선배 두 분(A, B)끼리는 같은 산업군에서 근무하면서 업무적인 논의도 종종 하고, 골프도 치면서 자주 만나와서 인지 딱히 업데이트할 게 없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만난 거라 업데이트할 내용이 꽤나 많았다. 개인, 가족, 회사 등등.. 그리고, 현재 내가 해고 대상자임도 잊지 않고 공유하면서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A선배는 나와 두학번 차이밖에 나지 않아, 학창 시절은 물론 단체모임에 가끔 참석하면 주로 내가 A선배에게 까불고 나머지 선/후배님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웃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소수 모임이니 만큼 나는 A선배가 경력에 대해 어떻게 고민을 하여 목표 설정하고 실행하고 있는지 다양한 질문을 했다. 현재 외식 프랜차이즈 CFO로 열일하고 계신 만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살짝 취기가 오른 나는 학창 시절에 장난을 치는 혹은 단체모임에서 까불던 버전으로 A선배에게 물었다.


"우와, 형님. 벌써 CFO라니 대단하네요. 그럼 형은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요?"


그러자, A선배가 자세를 고치고 정색을 하며 답했다.


"야, 네가 그러니깐 선배들이 너랑 얘기하기 싫어하는 거야.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밖에 질문을 못하냐? 내가 어린아이냐? 네가 나한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 게 진정성을 갖고 하는 질문이냐? 언제까지 대학시절에 머물러 있을 거야. 지금까지 대답한 내가 뭐가 되냐."


올라오던 취기가 싹 날아가고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곧바로 가장 높은 학번 B선배가 말을 이어나갔다.


"얘가 원래 재밌는 농담을 많이 하자나. (중략) 이게 꼭 단점만 되는 건 아니야. 빨리 한잔 하자"


나는 답하지 못하고 서둘러 술을 마시고, 자세를 가다듬으로 말했다.


"형님, 제가 친구들끼리 장난하던 말습관이 튀어나왔네요. 기분 상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상황에 맞게 조심하겠습니다."


술자리는 바로 다시 원래 분위기로 돌아왔다. 특히, A선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으며 2차/3차까지 식당과 술집으로 나를 안내하면서 맛난 거 먹고 힘내라면서 시원하게 계산까지 했다.


이틀 후, A선배로부터 카톡이 왔다.


"어제 xx에서 근무하는 분을 만났는데, 너랑 같은 산업군이라서 네 이력 말씀드렸더니 추천해 달라고 하시는데, 너만 괜찮으면 추천해 볼까 하는데, 어때?"


통화로 소개해주는 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 이력서를 공유드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A선배와의 대화를 끝낸 후, 나는 갑자기 고등학교 동창 모임 카톡방의 해외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내 카톡에는 14명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카톡단체방이 있다. 동창중 1명은 16년 전부터 해외 근무를 해서 한국에 자주 못 오고 카톡방으로 가끔 소통을 하는데, 가끔씩 해외에 있는 친구가 무리수를 던지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지금 가정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곤란한 질문들을 맥락 없이 던지곤 했었다. 한두 번은 친구들끼리 재미나게 웃어넘기는데, 개인방에서 할 얘기들까지 단체방에서 너무 자주 던지다 보니 피로감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해외에 있는 친구 입장에서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생활부터 친구들과 교류할 기회가 잦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붙어 있었지만 졸업 후 떨어져 있던 25년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 우리는 서로 충분히 길들여지지 못했던 건 아닐까. 

 내가 대학교 선배들한테 행동도 같은 맥락이다.

A선배의 날카로운 지적은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나에게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교훈을 주었다.


나의 주변을 특별한 것으로 가득 채우는 노력을 해야겠다.


어린 왕자와 헤어지면서 여우는 말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에게 네가 바친 그 시간들이야."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린 거야, 그렇지만 넌 잊어선 안 돼. 네가 길을 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니까,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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