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나에게 재테크가 주는 의미
누구나 그렇듯 우울한 시기가 있다. 나 역시 아무런 깜빡이도 없이 우울함이 찾아온다. 그런 시간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집안의 고요함을 없애고자 배경음악처럼 유튜브를 틀어 논다. 유튜브의 내용은 육아에서부터 음악, 취미, BGM 등 다양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유튜버가 자기의 경험과 정보를 담아 잔뜩 이야기를 한다.
“지금 제가 이 이야길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실행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왜냐 제 친구도 안 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한테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영상 내용을 다시 보았다.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로 주식개설 정보였다. 나의 첫 주식 이야기를 해보자면, 십여 년 전 시집가는 딸에게 급할 때 쓰라며 준 친정엄마의 쌈짓돈으로 시작했다. 아무 공부 없이 호기롭게 구입한 종목이 다섯 토막이 났다. 처참한 실패였다. 다시는 안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 주식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첫 투자였다.
아이를 낳고 엄마의 삶으로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삶과 나의 삶 그 중간 어딘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인가? 자존감의 바닥을 긁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 유튜버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핸드폰에 증권 어플들을 깔았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손가락만 까닥하면 깔리는 쉬운 걸 왜 못 해 하는 심정이었다. NH투자증권에서 저렴한 수수료를 위해 만든 나무어플을 깔고 가만히 앉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주식을 구매하지도 살펴보지도 않았지만 이미 돈을 번 것 마냥 두근두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었다.
투자의 기본이고 시작은 종잣돈 아닌가.
외벌이에 아이 키우며 살림하는 내게 종잣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시작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겁도 없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를 지배했던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충동 비슷한 무모함으로 돌변한 듯하다. 마이너스 통장님이 보내주신 천만 원이 담긴 계좌를 열어 정보도, 근거도, 이유도 없는 주식 쇼핑을 시작했다. 뭐 해먹을지 결정하지도 않고 일단 동네 마트에 나가 그날 마침 세일하는 만두나 채소 몇 가지를 사들고 돌아오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들인 품으로 치면 주식이 쉬었다. 신발 한 짝 안 신고도 증권사 앱을 종일 들락거리며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마침 눈에 들어온 이름이나 종목이 화려해 보이는 아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씐 게 틀림없다.
첫날엔 바이오주를 둘째 날엔 반도체주를 마구잡이로 느낌대로 쇼핑하는 여자였다. 바이오주가 호실적이어서 훨훨 날아오를 때 나는 올라탔고 반도체주가 대장주라고 하여 나는 무서울 것 없이 올라탔다. 달리는 말은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는데... 달리는 말인지도 모르고 홀라당 올라탔던 것이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지금 사지 않으면 나만 두고 가버릴 듯한 마음에 손가락이 마구 움직인 결과다. 하필 그럴 땐 손가락이 기막히게 빠르다.
얼떨결에 산 바이오주 5% 이상 오른다. 아싸! 이번엔 성공인가?
전체적으로 약간의 마이너스였지만 기다리면 다시 오를 것 같았다. 기다림이 가치투자라 생각하며 한없이 기다렸다. 그러나 내리고 찔끔 오르고를 반복하며 기대감만 주다가 반토막이 났다. 거기서 나는 두 번째 손절을 하고서 주식어플을 삭제했다. 난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한 것이다. 남편에게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조용히 숨 죽은 듯 지냈다.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남편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쓰라린 마음이 가시고 나는 오기가 생긴 것 같다. 주식(재테크)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지만 그런 의지가 생긴 것만으로도 나는 활기가 느꼈다. 뭘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었던 나에게 ‘해야겠다’, ‘하고 싶다’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밀은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는 데 있다." –파울로코엘료-
'나는 지금 잠시 돌아가고 있다. 누구나 이런 실패는 해보는 거 아닐까?’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책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물을 흠뻑 흡수한 솜이불 같은 몸을 이끌고 도서관 갔다. 재테크 분야의 서가에 서서 책 제목을 훑어보는 데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엄마의 돈공부, 돈의 속성, 자본주의, 미니멀재테크, 돈의 심리학 이렇게 다섯 권의 책을 가방에 담에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주야장천 독서를 시작했다. 책으로 경제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권태, 무기력, 우울로 버무려졌던 나의 생활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바닥에 붙어 있던 자존감이 약간 공기 중으로 올라오는 느낌이 났다. 이 모든 것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였는지 나의 우울함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투명 인간 같던 남편이 관심을 가진다. 우울에는 관심이 싫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남편과 아이에게 이유 없는 짜증이 그러했다. 그랬기에 밝아진 나의 모습이 남편과 아이 또한 반가웠나 보다. 나도 내심 그 관심이 나쁘지 않았다.
아침 아홉 시의 설렘이 생겼다.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경건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고 컴퓨터를 켠다.
1. 주식창을 열고 무작정 사지 않는다.
2.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에 믿음이 생기도록 공부를 한다.
3. 책을 읽으며 실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재테크에 대한 공부와 노력으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