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모님에게 배운 것들

부모에게 받은 10가지 긍정적인 영향

by 유지경성

부모는 좋든 싫든 우리 삶에 참 많은 영향을 준다. 어릴 땐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의 모습들이 내게 끼친 영향이 정말 많았음을 느낀다. 마침 이번 주에 엄마가 3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어릴 적부터 엄마이자 직장인이었던 부모님이, 나와 누나를 챙기며 동시에 회사 생활까지 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고충과 여러 감정들은 내가 감히 완벽히 공감하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받은 긍정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돌이켜보면서, 그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모습들에 대해 기록해두고자 한다.




1.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중심으로 토론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거의 마음대로 해왔던 것 같다.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는 내 기질을 받아준 일, 대학 선택, 갑작스러운 여행, 직업을 갖는 일 등 대부분 내 의지대로 결정했는데, 부모님은 이를 크게 막지 않으셨다. 다만 만약 내가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생각이 들면 ‘너의 생각에 동의하지만…’과 같은 말로 시작해 내가 보지 못하는 시나리오나 상황들을 조언해 주는 식이었다.


물론 한편으론 부모님이 워낙 바빠 내 진로나 선택에 깊이 간섭할 여유가 없으셨던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겪어볼 수 있었고, ‘답이 정해지지 않은 인생’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결과에 대한 의문을 품기보다는 어떻게 결정할지를 더 깊이 고민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한 번은 대학 시절 혼자 해외에 나가려 할 때, 엄마에게 “다른 집들은 이런 일을 하면 말리기도 하고 세세히 물어보기도 하던데, 우리 부모님은 왜 별 관심이 없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너는 어려서부터 큰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았고, 네가 내리는 결정은 믿는다”라고 하셨다.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 주신다.


2. 가족,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

우리 가족은 편향된 시선으로 누구 한 사람의 공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엄마가 제일 고생 많이 했다”거나 “아빠가 제일 힘들었다” 같은 말을 잘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가족이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고생했고 잘 이겨냈다”라는 태도를 유지한다. 내가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부모님은 “우리 가족은 그래도 행복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평온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맞벌이를 시작하셨는데, 운 좋게 그것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서 지금까지 맞벌이를 해 오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불행해서 이렇게 살았다”라거나 “특정 누군가만 유난히 고생했다”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모두 그 자리를 잘 이겨냈다”라는 인식이 기본이다.


이런 긍정적인 태도는 가족뿐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부모님은 60년대생이지만 회사에 대해 늘 감사함을 갖고 다니셨고, 그런 태도로 인해 회사에서도 오랫동안 인정받으셨다. 젊은 직원들과도 격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3. 자신이 겪은 힘든 일에 대해 하소연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꽤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 이제 와 어느 정도 보상심리를 가지셔도 이상할 게 없는데,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신다. “우리가 고생했으니 너희도 고생해 봐라” 같은 태도 대신에, 오히려 나와 누나가 좀 더 편안한 삶을 살도록 챙겨 주신다.


예를 들어, 부모님은 본인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데 많은 돈을 쓰지 않으시면서도, 내가 집에 방문하면 여유롭지 않아도 항상 소고기 같은 비싼 음식을 준비해 주신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도 “너는 조금 더 쓰며 살아라”라고 조언해 주곤 하셨다. 정작 본인들은 명품을 한 번도 사지 않으시면서 “너희 주변에 맞게 살려면 차나 명품도 필요할 수 있다”라고 하며, 우리를 이해해 준다.


4. 무채색 성격으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부모님은 대체로 취향이 강하게 확고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 모임을 하더라도 식사 메뉴나 장소 선택은 항상 자식들의 기호가 우선이었다. 덕분에 가족 간에 눈치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누나는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이기적으로 자라지 않았고, 서로의 니즈를 고려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렇다고 “우리는 하나다!” 같은 지나친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평화를 지향하며 서로에게 적당한 선을 지킨다.


5. 외부와의 갈등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불만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부모님은 ‘오냐오냐’ 대신 제3자의 시선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조언을 해 주셨다. 그 일이 정말로 부당한 일인지, 아니면 내가 사회성을 키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일인지를 잘 짚어 주셨다.


물론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속상해하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내가 상황을 잘못 인지하거나 내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네가 적응해야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덕분에 사회적 현상이나 갈등에서 생기는 불만보다는 더 빠르게 현실을 수용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6. 사랑의 표현이 많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조금 서툴다. 원래 좀 무뚝뚝한 편이라 그런지 부모님처럼 직접적이고 따뜻한 표현을 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부모님 덕분에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표현은 무뚝뚝할지라도, 마음과 행동으로 어떻게 사랑을 전달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운 셈이다.


7. 주변에 사람이 많다

부모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집에 있어도 전화가 자주 울려서 어릴 적에는 불만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어딜 놀러 갈 때도 전화벨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당시는 그게 단순히 ‘일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일 외적으로도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이 편하게 하소연하고 대화하며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부모님 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었다.


8. 부정적인 감정으로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일을 당해도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복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인연을 끊고 피하면 그만이라고 말씀하신다. 돈과 관련된 피해를 입거나 어떤 큰일이 있어도, 부모님은 분노나 복수심에 휩싸이는 대신 “우리는 우리 삶을 잘 살아가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신다.


나 역시 어떤 일에 분해서 화가 나 있으면 “똑같이 분노하지 말고 피하고, 네 길을 가라”라고 조언해 주신다. 이 덕분에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좀 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9. 사람을 돕는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학급 반장을 맡았을 때, 엄마는 학부모 모임에 자주 참석하셨다. 다니던 학교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있었고, 엄마는 그런 학생들을 우회적으로 도와주곤 했다. 또 중·고등학교 시절 몸이 불편한 분들이 있는 ‘소망의 집’ 같은 곳에서 나를 봉사하게 하셨다.


주변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보면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셨는데, ‘내가 가진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그것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어 주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대학에 들어간 뒤 자연스럽게 봉사활동, 교육봉사, 해외봉사 등 다양한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다.


10. 성실함과 감사함을 표현한다

내가 기억을 또렷이 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부모님은 새벽 6시 이후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주고, 7시 전에는 늘 출근하셨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즐겁게 출근하신다. 힘들다는 생각 대신 감사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등학생 때조차 그 성실함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 가서 쉽게 불평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내가 성실한 척 노력해도 부모님만큼 성실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닮으려고 노력하는 수준이다.




부모님은 내게 이처럼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구조적으로도 완벽한 가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긍정적이고 감사하며, 서로가 욕심을 가지기보다 함께하고,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는 점에서 나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 정년퇴임을 기점으로 달라질 엄마의 삶이 이제는 조금 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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