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낮출수록 더 단단해지는 삶
프롤로그 (Prologue)
마요르카에 도착한 첫날, 여러 사소한 일들을 겪고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의 나의 만족에 대한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치였다는 생각이었다.
런던에서 새벽 비행을 타고 약 2시간 30분 만에 마요르카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 이동과 비행이 겹쳐 몸은 꽤 피곤한 상태였다. 도착 직후에는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 업체를 찾았는데, 비용을 아끼려 선택한 로컬 업체에서 계약 조건 문제가 생겼다. 예약 당시와 다른 추가 비용과 조건들이 붙었고, 조정이 되지 않아 결국 예약을 취소했다. 비용을 더 지불하고 대형 업체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여행의 시작부터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썼다.
12월의 마요르카는 비가 잦았다. 도착 후 이틀 동안 거의 매일 비가 내렸고, 전반적으로 흐린 날씨가 이어졌다. 다만 해가 잠깐이라도 뜨는 순간에는 풍경의 인상이 확 달라졌다. 이곳의 풍경은 제주도를 떠올리게 했고, 해외를 자주 다닐수록 오히려 한국의 자연이 얼마나 정제되어 있고 완성도가 높은지 더 느끼게 된다.
마요르카에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이 만든 나달 테니스 아카데미가 있다. 나달의 테니스를 처음 가르친 삼촌이 운영하고 있으며, 나달의 아이들도 이곳에서 훈련한다고 한다. 도착한 날, 운 좋게 나달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코치들 말로는 그가 가끔 아카데미에 들러 코트를 둘러보고 간다고 했다.
렌터카 문제와 날씨, 그리고 테니스 아카데미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경험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낮은 기대치
마요르카에 와서 테니스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든 생각은, 시설과 환경이 테니스를 치기에 정말 좋다는 점이었다. 햇빛과 공기, 코트의 상태까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머릿속에서는 한국이나 런던에서 테니스를 쳤을 때와의 비교가 시작됐다.
처음 이곳 나달 테니스 아카데미를 예약할 때를 돌아보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한국이나 런던에서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기대치를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나는 오히려 조금 기분이 나빠지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환경은 분명 좋았지만, 머릿속에 있던 ‘이상적인 기준’과 현실을 계속해서 대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따져보면, 내가 기대했던 만큼 나달 아카데미에서 받는 것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받았던 개인 레슨에 비해 더 섬세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 지점에서 문득, 본질적인 것은 어디를 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와 이름이 바뀌어도, 테니스를 치는 방식이나 배우는 구조 자체는 결국 비슷했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하면 사실은 기분이 나쁠 일이 전혀 없다. 내가 지금 이 아름다운 마요르카 섬에서, 여유를 가지고 좋은 환경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는 사실만 받아들였더라면 이 시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기대치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 경험은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그 비교는 자연스럽게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물론 지불한 비용에 대비해 제공받는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소비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런 평가는 상품에 대한 판단으로 남겨두고, 내 기분이나 행복감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평가와 감정이 섞이는 순간, 경험 자체의 질은 빠르게 흐려진다.
이렇게 돌아보니, 음식점을 고르는 일부터 학교를 선택하는 일, 자동차를 구매하는 일,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많은 선택에서 우리는 늘 머릿속에 이상적인 기준을 세워둔다. 그리고 현실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실망은 결과보다 먼저 찾아온다. 어쩌면 불행은 상황 그 자체보다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기대치에서 더 자주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에 대한 나의 가치관
3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20대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행복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이제는 행복이 어떤 상태나 결과라기보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에 가깝다고 느낀다.
20대에는 성취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금전적인 풍요, 커리어의 진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타인의 인정 같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지금은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스스로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실제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쪽에 더 가깝다.
과거를 돌아보면, 행복하지 않으면 곧바로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한 상태’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로는 괜찮은 상태였음에도,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지금은 하루를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들이 각각 하나의 작은 행복으로 느껴진다. 이런 사소한 요소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행복이 된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거나, 감정의 사이클 때문에 완전히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워렌버핏과 찰리멍거가 이야기해 온 행복에 대한 사고방식을 좋아한다.
그들의 생각 중 몇 가지를 이어서 붙여보고자 한다.
찰리멍거의 낮은 기대치
찰리 멍거는 행복을 ‘무언가를 더 얻어서 생기는 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의 관점에서 불행은 대부분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그는 결혼, 인간관계, 일, 투자까지 같은 원칙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결국 세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행복의 수학이다.
찰리는 삶에서 불행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다시 말해, 행복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선 설정의 문제다. 삶의 결과는 늘 불확실한 분포를 따르지만, 사람은 그 분포 자체보다 ‘어디에 선을 그어두었는지’에 따라 만족과 불만을 느낀다. 기대치는 그 기준선이다. 기준선이 높을수록 평균적인 결과조차 손실처럼 인식되고, 기준선이 낮을수록 같은 결과가 이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기대치를 낮추는 행위는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동성이 큰 현실 속에서 감정의 손익분기점을 아래로 조정해, 실패 확률을 줄이고 만족 확률을 높이는 전략에 가깝다. 찰리 멍거가 말한 ‘낮은 기대치’란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불확실한 게임에서 감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학적 선택인 셈이다.
둘째, 사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다.
찰리는 인간의 성향과 습관은 생각보다 훨씬 고정돼 있다고 봤다. 특히 결혼이나 파트너십에서 “이 사람은 나와 함께하면서 바뀔 거야”라는 기대를 가장 위험한 가정으로 꼽았다. 기대를 낮추라는 말은 곧, 타인을 바꾸겠다는 환상을 버리라는 뜻에 가깝다.
셋째, 투자와 동일한 사고방식이다.
찰리는 기대치가 높은 상태를 과도한 레버리지에 비유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야만 만족할 수 있는 구조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기대치가 낮으면 웬만한 결과는 성공처럼 느껴지고, 관계와 삶 전반에는 자연스러운 안전마진이 생긴다.
그래서 찰리가 말한 낮은 기대치는 체념이 아니다. 그에게 이것은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능력에 가깝다. 기대를 낮추는 사람은 덜 원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기 때문에 더 안정적으로 행복해진다.
워렌버핏이 설명한 낮은 기대치
이런 맥락에서 워렌버핏의 한 강연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일부러 선택지를 좁힌다.
만약 이 강의실 안에서 꼭 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자질을 보고 고르겠습니까?
학생들은 웃다가 곧 진지해진다. 똑똑한 사람, 유머 있는 사람, 성격 좋은 사람, 매력적인 사람. 교과서적인 답들이 이어진다. 버핏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듣고 있다가, 타이밍을 재듯 말을 잇는다.
다 좋은 답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전혀 다른 겁니다.
여러분이 찾아야 할 건 낮은 기대치입니다.
강의실에는 웃음이 다시 퍼진다. 하지만 버핏의 표정은 가볍지 않다. 그는 결혼을 이상이나 희망의 이야기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본다. 관계를 망가뜨리는 건 큰 배신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기대와 그에 못 미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높을수록 평범한 하루는 계속 실망으로 기록되고, 평균적인 상대조차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버핏이 말한 낮은 기대치는 포기의 언어가 아니다. 상대를 덜 사랑하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상대가 나의 기대를 채워줄 것이라는 가정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바뀔 거라는 기대,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희망,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 쌓이는 순간부터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냉정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에 가깝다. 기대를 낮춘다는 건 기준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상대를 이상형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순간부터 관계는 덜 소모적이 되고, 생각보다 오래 버텨진다.
낮은 기대치를 가진다는 것은 삶에 대한 포기나 체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의 배움에 가깝다. 기대치를 낮춘다고 해서 목표를 향한 노력이나 생활의 기준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과정에서는 성실하게 임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무언가를 성취하면서도 동시에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