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말라깽이 고양이가 나타났다. 장맛비가 계속 내리던 터라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 한 탓인지 말라빠진 고양이가 더욱더 말라보였다. 가끔씩 비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며 ‘고양이가 비를 제대로 피하고 있을까?’, ‘먹이나 제대로 먹고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갑자기 불쑥 나타나 너무나 반가웠다.
작년 늦가을부터 보이기 시작한 말라깽이 고양이는 이 동네 길 고양이들 중 가장 작고 볼품없는 고양이다. 털도 거칠고 색깔도 예쁘지 않으며, 체구가 작은 만큼 힘도 없어 보여 다른 고양이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그 고양이가 불쌍해 보여서 동네 분들의 눈을 피해 가며 생선이나 고기를 내놓았다. 내놓은 음식을 잘 먹던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기만 하면 저만큼 물러나 숨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음식을 가로챈 고양이를 멀리 쫓아버리면 어김없이 그 말라깽이 고양이가 다시 나타나 내 보호 아래 다 먹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고양이는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음식도 먹고 햇빛을 피해 가며 부엌 앞 데크 테이블 아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가곤 하였다.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우리가 나갈 때마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야옹” 하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줄 음식이 없을 땐 많이 미안했다.
“고양아, 미안해, 오늘은 줄 게 없는데 어떡하지?”
“다른 곳에 가서 먹이를 찾아봐”
그러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 안으로 들여와 키울 게 아니라면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매일 줄 음식이 없는데 사료를 사서라도 먹여야 할까?‘
줄 음식도 없고 고민만 하다가 사료도 사지 못 해 며칠 주지 못 했더니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커다란 사료를 샀다. 그런데 정작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부엌 한 귀퉁이에 있는 커다란 사료 포대에 눈길을 보내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고양아, 빨리 와! 먹을 걸 사 놓았어.”
고양이가 오려나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거실 앞 데크 위로 뭔가가 휙 지나갔다. 말라깽이였다. 너무나 반가웠지만 반가워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보자마자 남편이 사료 포대를 뜯었다. 실로 꽁꽁 묶여 있는 탓에 쉽게 뜯어지지 않았다. 데크에 음식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고양이는 그냥 가버리려 했다. 내가 고양이를 부르면서 손짓을 하자 잠시 바라보더니 쌩 가버렸다. 혹시 집 주위에 있나 싶어 남편과 나는 밖으로 나가 ‘야옹’, ‘야옹’하면서 불러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녀석, 조금만 기다려주지...’
잽싸게 가버린 녀석이 원망스러웠고 사료를 사놓고도 제때 주지 못 한 우리에게 화가 났다. 나중에라도 오지 않을까 수시로 내다보았지만 끝내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쉼 없이 내리는 이 빗속에서 먹이나 찾아 먹고 있는지, 몸 편히 쉴 곳은 있는지, 힘센 고양이에게 해코지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라깽이야,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