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30분에 108배를 하고, 아침 6시 30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늘의 달리기 거리는 32km.
집 앞에서 출발하여 늘 달리던 코스를 따라 토정나들목까지 온 다음, 그때부터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달렸다. 일요일 아침에도 많은 사람들이 걷고 달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장거리를 달릴 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의외로 생기지 않는다. 페이스 조절에 더 집중하게 되고 너무 긴 거리를 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 오히려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린다. 뭣보다 아침에 동쪽을 향해 달리면 햇볕이 눈부셔서 정면을 바라보며 달리기가 어렵다.
지나간 다리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포대교, 원효대교, 한강철교, 한강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와 잠수교,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청담대교, 그리고 잠실대교로 올라가 한강을 건너고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남쪽은 길이 좁은데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아니 서울은 원래 사람이 많아...아침부터 단체 사진을 찍으러 하얀 상의를 맞춰 입은 젊은 남녀 무리 백여명이 보였다. 구리에서 온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열을 맞추어 달리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명품처럼 보이는 번쩍거리는 스포츠웨어를 입은 남녀 무리들이 달리고 있었다. 가을이 코너를 돌아 조금씩 낙하하고 있는 느낌이다. 햇볕이 약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달려도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 덕택에 지난 여름마냥 땀으로 온몸이 젖지는 않는다.
시작한 32km 달리기를 마무리한 지점이 잠수교 북단이었다. 서빙고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탁기를 돌리고 아침을 먹었다. sns에서 누군가가 최근 흑백요리사에 나왔던 요리사 에드워드 리의 자서전 표지를 올린 것을 보았다. 짙푸른 벽-조금 부식된 벽이었음 좋았겠다 싶은데 아주 말끔하다-앞에 고풍스러운 빨간 컨버터블의 앞부분이 보인다. 차의 보닛 위에는 테이크아웃된 음식과 음료가 놓여져 있다. 그리고 청잠바에 노란 티셔츠, 청바지를 입은 에드워드 리는 자동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중년의 나이도 어느정도 넘어선 듯한, 이제 장년기에 접어든 낯은 그의 인생여정을 어느정도 느끼게 한다. 이 표지 자체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시나 소설은 읽었을 때 별 생각이 없다가, 우연한 계기로 홀연히 떠오르고 그때부터 그 소설을 다시 생각하고 장면들을 되새긴다. '길 위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1940년대의 미국, 주인공은 정처없이 미국 곳곳을 자동차를 타고 떠돌며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난다. 때때로 그는 미칠듯한 스피드를 올리며 하루에 수백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을 중요한 성과로 기록한다.
그 뒤로도 이 작품의 변주와도 같은 작품들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발표되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영화 노매드랜드도 길 위에서의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나 자신이 늘 걸어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한국을 그렇게 걸어서 여행하며 게이들을 만나는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시대니 성소수자니를 대변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고, 나라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걷기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혹은 안 만나는 것에 대해 소설의 형태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미래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도 정하지 못한 가운데 걸어다니며 무언가를 보는 것, 듣는것, 만나는 것, 또는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 외면하려고 했는데 피할 수 없어 직면해야 하는 것에 대해 적는다면...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냥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소리내어서 울게 되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무 인과관계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