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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규 Oct 24. 2024

또다른 창조로서의 노쇠

흔히 20대만이 담을 수 있는 작품의 기운, 기세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한다. 그때 아니면 꺼낼 수 없는 얘기들이 있다, 라고. 그런 것들이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어떤 생동감, 거침없음, 적당한 무지함에서 오는 용기와 삶의 맥락에 대해 오해하거나 어두웠기 때문에 오히려 밝혀지는 어떤 진실들 등등.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시에 노쇠를 통해 갖는 어떤 한계는 다른 면에서 의미가 있다. 더 이상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의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기세가 쇠잔해졌을 때, 혹은 그가 보여주는 방향에 비해 주제가 낡고 진부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내용만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바라보던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그의 노쇠를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아이디어가 작가의 노쇠를 경유/관통하여 나온 결과물들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면면을 발견해나갈 것인가? 여기에서도 '기세'는 존재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한계를 이해하고 그 한계 안에서 움직이려고 한다. 이 기세가 두드러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깜냥 안에서의 움직임이 아닌, 그 깜냥을 넘어서는 무모함일 것이다. 노쇠가 보여줄 수 있는 기세 역시 범상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것을 드러낸다는 과감함과 용감함은 고귀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려 할 것인가? 그 반응들 또한 잘 지켜보도록 하자. 

좀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잠깐 생각해보았다. 이것이 충분히 반영되어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결과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모든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찬란하게 실패할 수 있도록. 실패가 성공의 반대어가 아닌 그 자체의 고유함이자 의미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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