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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상 Nov 14. 2024

노래 부르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하춘화 같은 가수가 유명했다. 그 가수들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동요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는 왠지 시시했다. 장차 가수가 되볼까도 생각을 했다.     

 

대학교에 가보니 외국가수들의 팝송이 너무 좋았다. 아바, 스모키, 사이먼엔가펑클과 같은 유명가수들의 테이프를 사서 듣곤했다. 요즘도 웬만한 팝송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는 제목과 가수 이름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익숙한 노래여서 같이 따라 부르기도 한다. 노래는 사람의 기분을 업시켜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명약인것 같다. 내가 우울할때는 노래로 카타르시스해서 벗어나곤한다.      


대학 때 키타를 어디서인가에서 얻었다. 코드를 누르고 오른 손가락으로 스윙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끝이 너무 아팠다. 그렇지만 어느정도 열심히 했더니 손끝에 굳은살이 박히고 아프지 않았다. 가요책을 사서 가요를 키타치며 불렀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좋은 키타를 내 손으로 사서 치며 하숙집을 시끄럽게 했다.      


지금 아내에게 프로포즈로 불렀던 노래는 J.D. Souther에 You are only Lonely였다. 그 당시 나는 유원지로 유명한 청평에서 하숙을 하며살았다. 청평으로 아내를 초청해 이름모를 유원지에서 키타를 치며 중간에 ‘당신이 외로울때면 나를 불러주오. 나는 당신에게 마지막까지  영원히 남겠소. 사랑한다’는 멘트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내는 너무 좋아했다. 그 노래가 우리의 결혼의 큰 공을 세웠던 것 같다. 키타를 쳐주면서 불러주니 더 심금을 울렸다고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그 때 키타를 정말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여행을 자주 가곤했다. 여행지 노래방에서 꼭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듣는 것은 매우 좋아했다. 아이들과 각기 노래를 돌아가며 목청이 나가도록 불러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부르면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는 평생 직장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했다. 젊었을 때 소풍을 가면 선생님들에게 노래를 시킨다. 1000여명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긴장이 되어 입술이 떨렸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좋아하고 밴드에 맞추다보면 내가 마치 가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 나라 사람은 나이 들어서는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한다. 우선 음정과 박자가 빠르지도 않고 노래가사도 쉬워 이해하기도 편하고 노래부르기가 쉽다. 얼마 전에 TV조선 방송에서 미스. 미스터 트롯을 진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그것을 보면서 트로트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었다며 그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자랑했다.      


나는 생전에 우리 아버지 노래 부르는 것을 본적은 없었지만 어머니 노래부르는 모습은 자주 목격했었다. 내가 어머니를 닮았나 보다. 그런데 목소리도 세월따라 걸죽하게 변한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은 고음이 잘 안 올라간다. 옛날에는 목소리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탁해지고 고음이 잘 안되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렇지만 어떡하랴!

그래도 노래부를 때만큼은 행복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것을...      

(2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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