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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벤터실록 Oct 28. 2024

가시광선 밖의 영역을 ‘보는’ 경험?

뉴럴링크 블라인드사이트

“처음에는 아타리 게임과 같은 낮은 해상도 밖에 볼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어쩌면 더 넓은 범위의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회사 뉴럴링크의 ‘블라인드사이트’를 소개하며 한 말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기술적 관점 이상의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1980년대 아타리 게임이 보여주던 픽셀이 거칠게 보이는 화면을 떠올려보자. 분명 비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풍부한 시각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러한 저해상도 이미지도 시각 장애인에게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블라인드사이트는 시각 피질이 손상되지 않은 경우, 선천적으로 시각을 갖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시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본다’는 행위에 관한 경험을 하지 못한 이가 기술을 통해 ‘보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이 경험하게 될 시각은 비장애인이 알고 있는 ‘본다’라는 행위의 경험과 같은 것일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기술이 궁극적으로 적외선, 자외선, 심지어 레이더 파장까지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전망이다. 단순히 잃어버린 기능의 회복을 넘어, 인간의 지각 능력 자체를 확장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알고 있는 ‘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재정의되는 특이점을 경험할 것이다. 자외선을 ‘보는’것은 과연 비장애인이 알고 있는 시각 경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감각일까?

아타리 게임 그래픽

확장된 시각 능력의 윤리적 딜레마

뉴럴링크의 블라인드사이트가 제시하는 가시광선 영역 밖에 대한 시각적 접근은 기술 발전의 놀라운 성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윤리적 고민을 안겨주는 딜레마가 될 것이다. 특히 이 기술이 내포한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은 가장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몇 년 전 중국의 원플러스 휴대폰의 적외선 필터 사건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해당 기기는 특정 물체를 투과하여 볼 수 있도록 기능한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때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신호탄으로서 작용했다.

블라인드사이트가 제공하는 적외선, 자외선, 레이더 파장 감지 능력은 원플러스 사례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다. 구체적인 우려사항을 세 가지로 추려봤다.

첫 번째, 물리적 경계가 무력화되며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두 번째, 블라인드사이트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시각 능력에서 오는 정보의 불평등이 생길 것이다.

세 번째, 타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관찰이 가능해짐에 따라 동의 없는 감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는 개인의 권리 간 충돌도 야기한다. 시각장애인의 시각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의료적 목적과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더욱이 상기 기술이 제공하는 능력이 인간의 기본적인 시각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어디까지가 정당한 시각적 보조인가?

두 번째, 기술 사용을 어떻게 규제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증강된 시각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러한 딜레마는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직결된 문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재정의되어야 할 수도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계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인간 감각의 재정의 & 사회적 혼란

인류는 오랫동안 다섯 가지 감각을 기준으로 세상을 인식해 왔다. 특히 시각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가장 지배적인 감각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블라인드사이트가 제시하는 확장된 시각 경험은 이러한 전통적 감각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할 것이다. 이것 또한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해 보았다.

첫 번째, 가시광선 밖의 정보가 기존의 시각 경험을 압도하여 현실을 인식할 때 왜곡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두 번째, 치료 목적이 단순한 시력 회복을 넘어설 때의 의료적 정당성을 재정의 해야 한다. 증강된 시각이 새로운 ‘정상 기준’이 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세 번째, 새로운 형태의 감각 경험에 관한 적응 기간, 즉 심리적 적응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혼란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부작용이 아닌, 인간의 감각 경험과 현실 인식 체계 전반에 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술 규제와 윤리적 가이드라인

블라인드사이트와 같은 혁신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기 않으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찾는 과정은 다른 혁신 기술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때와 유사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뇌’에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특수성과 ‘뇌 데이터’라는 특수성을 철저히 고려하였으면 한다.


마치며: 인간 감각 증강 시대

블라인드사이트의 등장은 단순한 의료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의 감각 경험과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본다'는 것의 의미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기본적 감각 능력의 한계,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마주하게 될 사회적 변화까지, 전례 없는 도전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본 글에서 다룬 상기 기술의 양면성을 인지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평소에 생각해 보며 이 기술이 실제로 적용될 세상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현명하게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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