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직관이 필요할까? 는 틀린 질문일 수도…
시험 전날 '망했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정말 망한 경험, 한 번쯤 있으시죠? 시험공부를 하다가 든 이 불길한 예감이 정확히 들어맞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런 예감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수년간의 학습 경험이 만들어낸 패턴 인식, 그것이 바로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직관은 수천, 수만 번의 경험이 압축된 결정체라고 합니다. 마치 고도로 압축된 데이터처럼 말이죠. 시험 전날의 그 불길한 예감도 사실은 이전의 수많은 시험 경험들이 만들어낸 패턴 인식이었을 겁니다. 공부량, 이해도, 피로도... 이 모든 요소들이 무의식적으로 종합되어 하나의 '느낌'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런데 최근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인공지능도 이런 직관을 가질 수 있을까요?(혹은 가져야 할까요?)" 현재의 인공지능은 마치 모든 문제집을 풀어본 학생처럼 패턴을 외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일종의 직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과 사람의 직관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람의 직관이 얼마나 정확한지 살펴보기 위해, 먼저 재미있는 사례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식 투자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요. 새벽에 갑자기 "아차"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트를 확인했더니, 역시나 큰 변동이 일어난 경험 있으시죠? 이런 게 바로 직관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연구진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투자자들의 직관적 판단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한지 분석한 건데요. 놀랍게도 이들의 '느낌'이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경험이 풍부한'이라는 조건입니다. 초보 투자자들의 직관은 그냥 동전 던지기 수준이었거든요.
이처럼 직관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버그는 금방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가 긴 시간을 날린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직관이 정확한 경우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합니다. 첫째, 반복적인 경험이 있는 분야. 둘째, 빠른 판단이 필요한 긴급 상황. 셋째, 변수가 너무 많아서 논리적 분석이 불가능한 복잡한 상황입니다.
fMRI 실험 결과를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전문가들이 직관적 판단을 할 때,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보다 감정과 직관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먼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몸이 먼저 아는' 거죠. 마치 게임할 때 손가락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어떻게 판단을 내릴까요? ChatGPT나 Claude를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집을 암기한 학생처럼 작동합니다. 입력받은 질문과 비슷한 패턴을 찾아 답을 하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는 사람의 패턴 인식 과정과 좀 유사합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에게 "내일 비가 올까?"라고 물으면,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서 확률을 계산합니다. 반면 사람은 하늘색을 보고 습도를 느끼면서 판단하죠. 얼핏 보면 완전히 다른 방식 같지만, 둘 다 과거의 패턴을 기반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GPT나 Claude와 같은 최신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 능력은 꽤나 정교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이 환자는 뭔가 심각해 보인다"라고 판단할 때는 환자의 표정, 목소리의 떨림, 자세, 심지어 보호자의 태도까지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아무리 많은 의료 데이터를 학습해도 이런 미묘한 맥락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인공지능의 '할루시네이션' 현상입니다. 때로는 완전히 허구의 내용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맥락 없는 패턴 매칭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더구나 인공지능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람은 한두 번의 경험으로도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고 응용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물론 Few-shot learning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람의 유연한 학습 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다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직관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인공지능은 어떻게 하면 맥락을 이해하고 더 유연하게 학습할 수 있을까?"로 질문을 보완하는 것이죠.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과 사람의 직관이 어떻게 다른지, 의료 진단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은 수백만 장의 의료 영상을 동시에 분석하여 병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숙련된 의사는 멀티모달 인공지능이라도 포착하지 못하는 일련의 현상들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이것이 바로 맥락적 이해의 차이입니다.
자율주행 시스템의 예도 흥미로운데요. 자율주행 인공지능은 도로의 모든 객체를 인식하고 수많은 주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베테랑 운전자는 옆 차선 차량의 미세한 흔들림만으로도 곧 끼어들 것을 예측합니다. 단순한 패턴을 넘어 도로 위의 암묵적인 약속과 운전자들의 심리까지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더 중요한 차이는 적응력에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처음 보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람 운전자는 소수의 경험으로도 즉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그런 상황에 대한 충분한 학습 데이터가 없다면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마치 교과서에 없는 문제를 만난 학생처럼 말이죠.
이런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은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고 소수의 경험으로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현대 인공지능이 도전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과 사람의 직관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두 시스템은 모두 경험에서 패턴을 학습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그러나 맥락을 이해하는 깊이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제 주목해야 할 점은 분명합니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더욱 넓은 범위를 센싱하고 적은 경험으로도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