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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가는 길

by 민창

용산역에서 춘천가는 ITX. 그 길가에 창문넘어에는 운행을하지 않는 페차 열차가 있다. 열차 옆구리에는 초록색 페인트로 ‘철도는 환경입니다’ 라고 써져있다. 철길 사이에 피어난 녹색 풀잎들. 녹슬어 정차되어있는 기차. 상반된 두 모습이지만, 어째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풀들과 기차에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들에게 세월이 묻어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세월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풀잎이 제멋대로 뻗어가는 모습에도, 기차의 녹슨 자국에도 같은 시간이 깃들어 있다. 철길 옆에서 무성히 자라난 풀들은 인간이 가꾸지 않았지만, 멈춰선 열차처럼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질감이 사라지는 것 아닐까.


기차가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풀잎은 그 곁에서 묵묵히 자란다. 정지와 생장, 쇠락과 생명이라는 대조는 오히려 조화를 만들어낸다. 마치 삶의 한 장면처럼, 멈춤과 자람은 서로를 설명하며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그것은 ‘끝남’과 ‘이어짐’이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속삭이는 듯한다.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선 자리에서, 풀잎은 다시 달려 나간다. 그 위에 깃든 세월은 녹슬어가는 쇳덩어리에도, 새로 돋아난 초록에도 동일하게 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앞에서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느끼는 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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