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어떤 글로 이 여정에 온점을 찍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 고민이 너무 커져서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을 조금 보냈던 거 같다. 그래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과 에세이집들의 마지막 글들을 읽었다. 존경하는 작가님들. 닮고 싶은 작가님들은 어떤 글로 마무리를 하실까. 내가 부족해서 의미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정리하는 중요한 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글보다 힘을 더 줘서 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책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부담 없이.
어떤 의미가 있는 제목 아래에 있는 글보단, 그냥 쓰고 싶었던 내 마음.
왜 계속 글이 써지는지 궁금했던 내 마음.
이 글모음을 읽는 누군가에게 왜 이 글들에 세상에 나왔는지 물어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다시 체크했다.
그냥.... 쓴 글로 마무리해야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날 약속을 끝내고 함께 약속을 보냈던 친한 형과 카페에 갔다.
"민창아 너는 행복을 뭐라고 생각해?"
"행복...? 음... 난 요즘 커피 내릴 때 행복한데... 행복은 커피지 않을까?
"행복은 햄버거야(?)"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까도 지금도 머릿속을 헤엄친다.
마지막 글을 계속 쓰지 못하고 있던 이유가 마무리 글을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하나였을까.
글을 쓰는 행위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었다.
서울과 인천을 오고 가는 출퇴근 시간이 내 삶에 생겨 육체적인 지침도 이유 중 하나겠다.
옛날에는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와 문장이 있다면 집에 와 글을 쓰지 못하면 잠이 안 왔다.
요즘은 단어와 문장이 머릿속 깊은 바다에서 잠수를 한 후에 나오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은 나를 발견한다. 사진은 여전히 찍는다. 축구는 여전히 내 삶이고, 커피는 여전히 행복이다.
근데, 왜 글은 줄어들고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이 힘든 순간이라잖아.'
나는 지금 힘든 건가.
행복한 거 같은데. 행복이 마음과 몸과 가깝다고 느낀다.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고
사소한 것에 만족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사소한 것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가.
글을 쓰는 행위가
해변에서 모래를 파는 모습처럼 갑자기 보였다.
아무 목적 없이 글을 쓰고 모은 이유가 슬픔이라는 진주를 얻기 위한 모래 파기였던 걸까.
행복과 슬픔은 공존할 수 있는가.
커피를 내리고 마실 때 원하는 맛이 덜 날 때?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행복이고 맛은 슬픔이라 전제하면 공존할 수 있는 걸까?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데 원하지 않은 결과물을 얻었을 때?
사진을 찍는 과정은 행복이고 결과물을 슬픔이라 전제하면 공존할 수 있는 걸까?
아니, 공존할 수 없는 거 같다.
이건 행복이 슬픔의 방향으로 이동한 거 기 때문이다.
그럼 행복을 느끼는 과정에 글을 쓰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에 슬픈 걸까.
나는 행복에서 슬픔으로 넘어가고 있는 걸까.
이 정도로 슬픔에 둔하다.
내가 괜찮은지 잘 모를 정도로 나는 여전히 슬픔과 화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무작정 판 모래밭에 진주를 찾았으니 잘 가공해 봐야겠다.
더 아름다운 미(美)를 가지기 위해 이제는 가공할 차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