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낙서 하나 없는 흰 여백지
그림을 그려야 하나
글자를 써야 하나
기깔나는 그림하나 그려봐라
감탄스러운 문장 하나 써봐라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난 그림 잘 못 그리는데 기깔나는 그림은 무슨
난 글도 잘 못쓰는데 감탄스러운 문장은 무슨
에이아이한테 부탁해 봐라
요즘 그놈은 그림이니 글이니 부탁하면
뚜딱나온다더라
기깔나고 감탄스러운 작품은 딴 곳에서 부탁해라
나는 그놈과 달리 완벽하지 않아
나는 널 위해 그리고 쓰는 게 아니니
가능성이 무한해 보이는 여백지
그러면서도 깊고 끝이 없어 보이는 바다를 닮은 여백지
두려울 수밖에
부족하지만
그림을
글을 남기는 이유는 간단하지
가능성과 두려움의 무한궤도를 닮은
흰 여백지를 사랑하기에
못해도 남겨보는 거란다
나를 위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 절망을 먹는 것이라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