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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인사이트트 Oct 29. 2024

첫 아이와 자두 세 알, 그리고 이별

9주 4일 차 계류유산

사랑하는 사람과 나, 그 둘이 닮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찬 집을 꿈꾸었다. 내 품에 한 아이,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 난 언제나 다둥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선택도 충분히 이해해 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걸 선택한 결혼한 사람들…


그들의 삶의 방향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나 사이 알 수 없는 벽이 문득문득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나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건, ‘비혼’, ‘딩크족’을 외치던 사람들이 정작 나보다 먼저 임신하고, 그리워하던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볼 때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겼어."
"피임했는데, 생겼어."
"막상 생겼을 때 오히려 막막했어."


그 말들이 귓가에 맴돌 때마다 억울하고 서글펐다. 나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일이 그들에게는 어쩌다 얻은 선물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들의 기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자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몇 년이 흐르고 나니 좋아하던 육아 영상조차 눈물이 차오르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엄마’가 되는 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 간절한 바람이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올 초부터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는 ‘이유불명’. 의사는 우리 둘 다 정상이라고 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좋다는 모든 걸 다 먹었다. 흑염소, 코엔자임 Q10, 고용량 엽산, 비타민D, 오메가3, 유산균, 마그네슘…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 먹으며 하나하나 목을 넘길 때마다 ‘이제, 아기가 찾아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슴에 담았다.

당시 받았던 임산부 배지 ㅎㅎ 지금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대자연의 선물 같은 기쁨이 내게도 찾아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나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듯했다. 기능적으로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고, 꿈에 그리던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찼다.


아이에게는 ‘라온’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순우리말로 ‘즐겁다’는 뜻. 라온이를 가진 동안은 정말 즐거웠다. 입덧도, 피곤함에 무거워진 몸도, 배의 통증도, 절뚝거리는 다리도 모두가 행복이었다. 아기의 심장 소리는 우렁차게 들렸고, 아기집도 평균보다 컸다. 호르몬 수치가 남들보다 배로 높아 혹시 쌍둥이일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라온이 9주 4일 차 되던 날. 그날은 모든 불행이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덮쳐온 날이었다. 남편은 인대 파열로 입원 중이었고, 나 혼자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라온이. 얼마나 컸을까?


초음파를 보더니 의사 선생님이 3초간 멈칫하셨다.


"선생님, 애기가 자는 거예요?"


초보 엄마였던 나는 라온이가 자는 줄 알았다. 양수사이로 둥둥 떠있던 라온이의 모습. 그날따라 가만히 있던 모습. 손가락과 발가락이 멈춰있는 모습.


"계류유산입니다. 생각보다 흔합니다. 폐에 이미 물이 찬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폐는 검게 물들어 있었고, 그렇게 반짝이던 심장 불꽃이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20대의 유산 확률이 겨우 4%라고 하지 않았던가. 심장 소리가 잘 들리면 유산할 확률이 적다 하지 않았던가. 억울했다.


며칠 전부터 입덧을 하지 않던 나.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던 나.


너무 서러워서 아기를 잃은 곰처럼 울부짖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의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연의 섭리’라고 말했다.


펑펑 울었다. 진찰실에 나와서 배불러있는 산모들을 빠져나와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 울었기에 목에 구슬이 켁켁 걸린 듯 빠져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갔지만, 남편은 울지 않았다. 본인이라도 정신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냐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시끌시끌한 병원의 스타벅스,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남편.


우리 부부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애썼다. 우리아이. 아직 통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리 아프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 주에 바로수술을 받기로 했다. 머리는 이해했지만, 몸은 여전히 임신 증상을 보이며 나를 괴롭혔다.


수술실에 오르기 전 마지막 초음파를 봤다. 그때의 나는 폐에 기형이 있는 아이더라도, 살아있기만 한다면 꼭 고쳐줄 거라 다짐했었다.


라온이의 심장 불꽃은 다시 불타오르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자, 임신 전의 가벼웠던 몸 상태로 돌아왔지만, 내 첫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두를 좋아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자두 세 알. 라온이를 가졌을 땐 그토록 달고 상큼하게만 느껴졌던 자두가, 이제는 어쩌면 이렇게 쓰디쓴가. 나는 이제야, 내 첫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필자입니다. 여전히도 아이는 찾아오지 않고 있기는 해요. 마음의 아픔은 많이 나아져서 이제는 '괜찮습니다!' 이 글은 유산하고 '좋은 생각'에 기고한 글이었는데요, 당선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글에 살을 덧대서 이렇게 세상에 내놓습니다.


라온이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라온이의 이야기는 세상에 나올 수 있어 참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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