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자꾸만 숨어있고 싶다. 퇴근 후 오랜만에 카페 벽 한구석에 앉아 커튼에 얼굴을 숨기고서는 안도감을 느낀다. 어딘가에 숨어서 하루쯤은 나오지 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몇 개월째 하고 있는지 헤아려보면서. 숨고 싶다는 말은 숨을 데가 없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고. 이런 말을 쓰니 얼핏 우울해 보이지만 나는 지금 해야 할 일들을 거의 마쳤고, 수료식을 3일 앞두고 있으며, 2025년에는 새 학기 준비 부담이 없어 피곤하긴 해도 마음은 평온하다.
처음 겪어본 워킹맘 생활은 말이 안 나오게 지치고 정신없었지만, 5년의 공백을 무사히 메꾸고 드디어 1년을 마친다. 오랜만에 나의 일터로 돌아와 1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교사가 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가 하는 일이 좋아졌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게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일의 소중함, 일터에 나갈 수 있는 감사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고 고맙게 여기려면 우선은 그것을 좋아해야 하는 거였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다른 것들은 욕심내지 않고 잘 쉬고 천천히 살아보리라 자주 생각한다. 책도 조금만 읽고, 채소도 많이 챙겨 먹고, 방학에는 운동도 해야지. 오래오래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웃으며 지낼 수 있도록.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 하나, 방학이 시작되면 혼자 집에 남아 구석에 오랜 시간 숨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기. 다시 학교로 돌아와 너무 많은 이를 만나고,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해서 매일이 버겁던 내가 새로이 만날 아이들을 넉넉히 품을 수 있도록 말이다.
2024학년도를 끝내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 지난 1년간 내 안에 담아두어야 했던 긴장과 걱정, 내뱉던 한숨,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견디던 시간을 생각한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게 했던 것들도 떠올린다.
쉽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결국엔 좋았던 게 더 많았던 순간들.
덕분에 이렇게 '끝'이 내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