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소아병원이다. 진료과목이 소아과뿐이다. 외래 환자와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소아병원이다. 소아병원은 어른의 병원과 다른 점이 있다. 일단 소아병원은 보호자의 동반이 없는 경우 입원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주 어린 미성년자의 경우 의사결정을 존중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환아가 약을 안 먹겠다고 한다. 열이 펄펄 나는데 약을 안 먹겠다고 하면 보호자와 합심을 하여 약을 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중요하고 꼭 복용해야 하는 투약을 거부한다고 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질병의 치료에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또, 열을 안 재겠다는 경우다. 소아는 어른들보다 고열의 발생이 빈번하다. 고열로 인한 열성경련이 생긴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 열 체크가 너무 중요하다. 환아가 열을 안 재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한다면 혹시라도 생길 고열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전화하는 것도 아니면서 고막체온계로 열을 재면서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열을 재기 싫다는 환아를 어르고 달래서 끝내 열을 재고야 만다. 치료받기 싫다는 아이에게 본인의 의사와 달리 강제로 치료가 들어간다.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만약에 같은 상황이 어른 병동에서 생겼다면 어떨까? 그때의 경우는 아이들의 경우와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어른인 환자분이 약을 안 먹겠다고 한다면? 혈압을 안 재겠다고 한다면? 일단은 꼭 필요한 약이니 복용하기를 권할 것이다. 그리고 혈압 체크는 중요하니 혈압을 잴 것을 권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른인 환자를 어르고 달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완강히 이런 상황을 거부하시는 경우도 있다. 환자는 치료를 받을 권리와 거부할 권리가 있다.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 할 수 있다. 의사가 처방한 거라고 해서 뭐든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치료까지 거부한다면 일단 간호사인 나는 환자를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의사에게 보고를 한다. 환자는 의사와 면담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간호기록지에 기록을 할 것이다. 환자의 의사에 따라 투약 거부, 혈압 측정이 거부되었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혹시라도 나중에 투약거부와 혈압측정 거부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기록을 남긴다. 만약 정말 중요한 고혈압 약이었는데 투약 거부로 인해 뇌혈관이 터지거나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보자. 분명 의료진은 투약을 권유했지만 환자 본인의 선택으로 투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문제는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어른 환자의 경우는 치료를 받을 권리와 거부할 권리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
하지만 소아병원의 경우 아이들의 치료에 대한 권리는 대부분 묵살되어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너무 무서운 주사를 맞기 싫어서 안 맞겠다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보호자와 간호사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너무 아픈 치료의 과정이긴 하지만 주사를 맞아서 치료하는 것이 이 아이의 완치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환아의 경우 병원에서 의견을 존중해 주기 힘들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 해 간호한다. 아이들의 의사결정이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적다. 그래서 보호자 동반 없이 입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는 병원에서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빠른 치유와 회복을 바라는 어른들의 모습을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이렇게 오늘도 병원에서의 하루는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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