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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 초보주부의 시간관리

306일 차

by 소곤소곤


저번 달에 열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났다. 그리하여 나는 19년째 살림하는 주부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증명되었다. 아~~ 왜 한숨부터 나오는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나는 살림에 흥미가 없는 스타일이다. 아주 예쁜 그릇에 음식을 내놓는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쁘다거나, 설거지를 깔끔하게 했을 때 마음의 안정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내가 해내야 하는 자리에 있기에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집안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지 않는다. 딱 나 같은 스타일은 어떻게 하면 집안일을 간편하게 할 수 있을지 여기저기 기웃거릴 뿐이다. 꼼수를 부린단 말이다.

오늘도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평일 아침 8시 반이면 모든 가족은 다 자기의 자리를 찾아서 밖으로 나간 후다. 몇 달 전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 또다시 한 권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나다. 가슴 설레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가슴 설레지 않는 집안일을 후다닥 해버려야 한다. 어차피 미루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른인 나는 알고 있다. 집안일을 미루더라도 어차피 내가 해야 한다. 그러면 후다닥 해지 우고 마는 것이 좋다.

일단 타이머로 시간을 맞춘다. 대개의 경우는 1시간을 맞추는데, 집안일이 조금 많으면 30분을 연장하기도 한다. 더 이상의 연장은 없다. 하루의 시간 중 너무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소요할 수는 없으니.

아침 8시 반까지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낸 후 초스피드로 거실을 치우고 식기세척기와 세탁기를 작동시킨다.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도 아니면서 엄청난 속도로 집중력 있게 집안일을 해낸다. 최소 10시를 넘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만약 아침 10시까지 집안일을 다 못했다면? 그냥 멈춘다.

솔직히 대부분의 집안일이라는 것은 급할 것이 없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는다던지 시간에 맞추어서 약을 줘야 한다던지 하는 급한 일이 아니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살짝 미룰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해보자. 거울을 깨끗하게 닦고 욕조를 청소하는 일은 반드시 오늘 완수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내일 할 수도 있고, 다음 주에 할 수도 있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평일에 쉬는 날이 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쉬면서도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눈에 밟히는 집안일이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다 하다가는 출근할 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나름 마감시간을 정해서 그동안 열심히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커피 한 잔 하면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은 평일 이브닝 근무를 하는 날이다. 시간을 블록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침 8시 반까지는 가족들의 아침 식사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9시 반까지는 집안일의 시간으로, 오후 2시까지는 나만의 시간으로 사용할 예정이고, 오후 10시까지는 병원 근무를 할 예정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관리를 잘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금세 번아웃이 올 것이다. 가끔은 중요도가 낮은 업무는 살짝 못 본체 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듯 나는 부지런한 척하면서 살고 있다. 출근하는 워킹맘의 역할을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딱 하나 미루기 힘든 것이 먹는 것을 챙기는 일이다. 워킹맘의 꼼수 살림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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