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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Oct 31. 2024

‘우리’를 위해 분명 해야 할 일

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늘 병원과 상담을 받고 나올 때면 다음에 할 이야기가 있을까? 하며 문을 닫고 나오는데 정말이지 눈물 나게도 늘 고민거리가 생겼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할 내 이야기를 꺼내본다.




(의) 요즘은 좀 어떠셨어요?

(나) 엄마라는 존재가 점점 버거워져요. 엄마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엄마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를 해와요. 걱정하지 말라고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러 일부러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게 거짓말이라는 걸 아니까 슬퍼요. 그래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으면 몇 번씩 해와요. 전 딱히 할 말도 없어요.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데 엄마랑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어요? 전화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저는 제 멋대로 상상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해요. 사실은 엄마가 걱정되면서도 전화를 피하고 싶은 모순된 감정이에요. 그리고 결국 이렇게 연락하고 만나다 보면 종국에는 또 아빠도 마주해야 할 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기를 해야 할 것까지 생각이 닿으니까 괴롭더라고요. 도망치고 싶어요. 전 이젠 두 번 다시 그런 연기하기 싫거든요.     




(의) 그러면 받지 마세요. 받아도 마음이 불편하고 안 받아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안 하는 게 낫지. 뭐 하러 전화를 받아요. 받아서 미정 씨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나) 아…! 네, 그런데 전화를 안 받으면 엄마는 분명 계속 전화를 해올 거예요. 요즘에만 봐도 제가 일부러 전화를 안 받으면 미정이가 연락이 안 되네 하며 언니나 신랑에게 전화해요. 예전엔 아빠의 부재중이 절 숨 막히게 했다면 이젠 엄마의 전화가 그래요.     




(의) 그렇다면 어머님께 말씀드려야죠. 저에게 말씀하신 것처럼요. 그리고 미정 씨는 어머니와의 거리도 분명 필요해 보이고요. 치료 중이다. 당분간은 연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어요.

(나) 그건 엄마가 고립되는 거잖아요…. 제 신랑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누구보다 힘든 건 어머니일 거라고 너무 어머니께 매몰차게 하지 말라고요. 그러면 어머니는 어디에 기대냐고요. 그 말을 들으니 차마 절연을 선언할 수가 없었어요. 분명 엄마가 집에 들어간다고 할 때만 해도 무조건 엄마랑 절연이야라고 외쳤는데 말이죠.     




(의) 아니에요. 누구보다 중요한 건 미정 씨예요. 본인이 본인을 지켜야죠. 본인을 지켜야 미정 씨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거리감을 통해서 어머님도 미정 씨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니도 스스로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으실 수도 있고 어머니도 어머니 스스로 단단해지실 수 있어요. 더 이상 미정 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그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그게 건강해지는 과정 중 하나이고요. 분명한 건 미정 씨가 계속 연락을 받는다면 어머님께서는 계속 미정 씨에게 의지하게 될 거예요. 반대로 미정 씨는 계속 어머니와 동일시하면서 더 고통스러워질 거예요.

(나) 알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분명 해야 할 일이었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난 가슴 아픈 이별을 선언했다. 그것은 ‘절연’이었다. 신체를 잘라내는 고통을 참아가며 보낸 내 문자에 답은 정말 허무하리만치 심플했다. ‘그래~~ 알겠어! 딸~~~ 잘 지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는데 난 뭐가 그리 어려웠던 걸까? 엄마란 존재는 ‘아빠에게 잡힌 인질’ 같은 존재였다. 이런 사고가 스스로를 엄마에게 얽매이게 했고 늘 아빠에게 조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게 날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누구는 독하다며 욕할지 모르겠지만 난 내 부모와 절연을 선언함으로 처음으로 난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느꼈다. 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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