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사진 촬영에서 시작된 특수교사의 좁고 작은 틈보기
“여권 사진 미리 찍어놓으면 좋겠는데.”
다가올 겨울방학 여행을 준비하며 여권사진을 미리 찍어 두자는 남편의 말에 두 아이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간 토요일 아침.
“사진 골라 보실래요?”
좀전에 사진기사님은 분명히 딱 좋다고 했었는데 왜 엄마 눈에는 지금 내 눈앞의 너만큼 이쁘지 않은 건지.
그 이유를 선명하게 깨닫게 된 건 모니터에 띄운 내 사진을 봤을 때였다.
나이들어 보이는 건 그렇다치고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얼굴형과 눈까지.
손보지 않고는 아주 못쓸 것 같았으니까.
왜 사진은 항상 실물보다 못생겨 보일까.
사진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담는다. 큰 아이의 곰슬곰슬 복스러운 눈과 볼, 작은 녀석의 사랑스러운 보조개는 평소처럼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눈, 코, 입, 눈썹, 얼굴형. 평등하게 고루 시선을 주어 보는 느낌이랄까.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엄마의 눈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아이의 눈이나 보조개처럼, 고루 보는 듯해도 강약을 두어 보고 싶은 이쁜 데다 시선을 준다. “엄마 눈에는 니가 제일 예뻐.” 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얼핏 크게 다를 것 없는데도 내 눈엔 인생샷이 되는 것.
사랑하면 좋은 점만 보이다가 같이 살다보면 그 사람의 여러 면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해도 나만은 턱에 난 작은 뾰루지가 하루 내내 신경쓰이는 것은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달리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수교사인 나라면, 그런 내가 쓰는 글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사진과 같은 글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을 만큼.
학교라는 내 치열한 삶의 현장에는 사진처럼 기억하고 싶은 일들만 벌어지지 않기에, 그 공간에서 그 조직의 일원으로 마주해야만 했던 지나치리만큼 답답하고 부당하고 억울하여 종종 우울하고 화나게 만들었던 일들을 구태여 이곳에 옮기고 싶지는 않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느낌에 몰렸던 순간들도.
나의 글에 담기는 일상과 시간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하루 안에서는 사소하고 보잘것없고 가볍고 시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10가지가 있다면 그 가운데 1이거나 그보다 더 작은.
물론 빛과 그림자가 늘 공존하고 배경을 완벽하게 도려낼 수 없듯이 어두운 감정들이 드문드문 묻어날 수도 있겠다. 정오의 그림자처럼 묻어나는 어둠 정도는 그대로 둘 생각이니까.
그런 그림자를 감수하더라도 때로는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내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또 애써서 바라보려고도 했던, 그래서 현실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나를 꼭 붙잡아 준, 나를 살아오게 한 그 희망의 순간들을 하나씩 풀어내보고자 한다. 그 작지만 환한 빛줄기는 학교의 아이들이 주는 웃음이기도 했고 꼬깃꼬깃 품에 안고온 샌드위치를 내미는 남편의 손이거나 저녁이면 오매불망 기다리던 엄마를 꼭 안고 맞이해 준 아이들의 조그맣고 따스한 체온이기도 했다.
지난 시간 끄적였던 나의 짧은 일기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어이없게도 ‘이 애정이 가득 담긴 일기를 쓴 선생님은 누구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기를 쓴 시점을 보면 직장은 직장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참 고단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분명한데.
기운빠지게 싸우고 지쳐서 장렬하게 뻗었던 기억은 어디로 다 가버린 건지.
당시에는 전부였던 전투같은 하루하루의 일기는 작고 시시하고 우습다. 그런 일이 전부다. 한 학기 내내 배운 덧셈을 열 손가락을 쫙 펴고도 아주 창의적으로 틀리던 Y, 2교시에 갑자기 풍겨 온 J의 응가 냄새와 코를 막는 쌍둥이들(빨래까지 뒷처리를 마친 나의 시원한 마음도 물론.), 방과후 시간이면 교실을 채우던 달콤한 쿠키냄새, “선생님, 나 보세요.” 다 보이는데도 숨기려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며 끝없이 CD의 재생버튼을 눌러대던 둥그런 S의 뒷모습.
나는 그런 작은 것들을 붙잡으며 오늘까지 이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닐까.
새벽에 읽던 책의 문구를 옮겨본다.
주변에 있는 사물, 바람, 햇빛, 신발, 단추, 머리카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쳐 나오는 진동이 파문을 일으킨다네.
지식은 울림을 주지 못해.
생명이 부딪쳤을 때 나는 파동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내가 서랍속에서 꺼내 놓으려는 이야기들은 18년의 고군분투한 시간이 아니라 햇빛, 신발, 단추, 머리카락과 같은 것들이다. 차라리 “에이, 미화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해주시면 오히려 고마울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키운 힘든 시간은 기억에도 없고 예뻤던 재롱만 마음에 남아 있는 것처럼, 돌아보면 그 먼지같고 실낱같은 기쁨과 웃음들이 18년의 시간동안 교사로 살아올 수 있게 했던 것이니까.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사진이 아닌, 엄마 눈에 비친 아이의 얼굴처럼 틀림없이 사심을 듬뿍 담은 미화된 기억이 맞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