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되는 소음이 거의 없는 늦은 저녁. 누구도 깨우고 싶지 않고 그러면서 또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것만 같으며 또 오래도록 잠이 들지 않았으면 하는 밤. 빗방울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어도 좋을 가을밤이 내게 찾아왔다. 빗속을 오래도록 서성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유난히 좋아해서 비 오는 날은 유난히 마음이 달뜨곤 하는데 더군다나 오늘은 시골집, 한옥집에서 가을 빗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마음이 더욱 분주해지는 밤이다. 그간 바쁘단 핑계로 여름을 건너뛰었으니 아주 오랜만이기도 하다.
한옥집 마당에 내리는 빗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저 주룩주룩, 타닥타닥이 아니다. 빗방울이 닿는 표면에 따라 간격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특히 이곳에선 더욱 다양한 소리를 선명하게 귀에 담을 수가 있다.
양철지붕에 내리기도 하고 나뭇잎에도 또 토방에도 시멘트 바닥 위에도 나무 지붕 위에도 내리니 그 소리의 크기와 박자는 단연 제각각이다.
나뭇잎에서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는 간격이 고르게 들리는 편이고, 기와지붕 빗물받이에 모여 내리는 빗소리는 일정하게 주르륵 - 안정감 있게 들린다. 비가 잦아들 때까지 꾸준히...
양철지붕에 비가 내려앉는 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이 소리는 일순간 여기저기에서 빛이 연속성 있게 반짝이는 것처럼 다른 강도와 간격으로 한 번씩 들려준다. 오래도록 이어지는 꽤 가볍고 귀여운 타악기의 소리 툭툭.
그뿐이랴. 사실 돌멩이도 비를 맞고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상상이지만 고양이털에 내려앉는 빗소리도 소곤대듯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나무둥지에도, 풀잎에도, 낙엽더미에도, 내가 좋아하는 밤송이 열매에게도 골고루 비는 내려앉을 것이며 그 모든 것들이 빗소리가 되어 조금 크고 일정하게 내 귓전으로 흘러들어 특별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을 수도 있다.
들을 때마다 다른 음악. 거창하지 않게 툭 건네는 위로의 손길과 닮아있는.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 빗소리 듣는 것을 좋아했었나 보다.
친정집에 오면 꼭 하루는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도 그 때문인데 오늘 이렇게 밤늦도록 비가 내려주니 고마울 수밖에. 친정집에 오면 꼭 하루는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도 그 때문인데 오늘 이렇게 밤늦도록 비가 내려주니 고마울 수밖에. 엄마는 밭이 엉망이 된다고 웬 비가 이리도 오래 내리냐며 속상해하시지만
하루만요.
오늘 충분히 이곳저곳에 내려주길. 가을바람을 타고 도착지를 바꾸기도 하고, 담벼락으로 기대 흘러내리기도 하며 아무렴 네 마음대로 네 멋대로 마음껏 내려앉아 목소리를 들려주길. 빗소리 잦아들 때까지 오래도록 서성일 오늘의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