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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갯짓 Oct 24. 2024

나와 함께 빗속을 달려볼래요?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진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의 끝자락을 보이지는 않을까?’

곧 마음을 그러쥐듯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터덜터덜 몸풀기 걷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빗방울이 하나 둘 내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집으로 가야 하나 망설였지만 마음이 썩 내키진 않았다. 사실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감정을 날 것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곧 그칠 거야’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속을 달려본 적 있나요?’


어릴 적, 학교에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날,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면 집까지 뛰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시절엔 가족수에 맞춰 1인 1 우산을 갖춰놓는 일도 흔치 않았었고, 망가진 우산을 들고 학교 가는 일도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삼 남매 중에 먼저 우산을 쟁취한 사람이 임자. 늘 학교종이 땡 울리기 직전에서야 도착했던 나는 멀쩡한우산을 들 수 있는 기회는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래! 비 오면 비 맞고 뛰어가면 그만이지. 뭐 별거라고,’


느닷없이 그때의 마음이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비 맞고 뛰면 그만이지. 뭐 별거라고. 어차피 집에 가서 씻으면 될 것을‘

그렇게 나의 모험, 조심스러운 ‘우중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혹여나 미끄러지진 않을까? 자세가 흐트러져 달리기가 엉망이 되진 않을까? 다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에서도 좀처럼 나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얼굴로 쏟아지는 빗방울, 비가 실어다 주는 낮고 선선한 바람. 신발이 땅에 착착 부딪히는 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비가 내리는 풍경. 서둘러 시야를 벗어나는 사람들.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름풀들...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모든 것들이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술렁였던 모든 순간이 잔잔해지고, 나는 그저 내 앞에 열려있는 길을 따라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에겐 비를 피할 수 있는 집까지 빨리 뛰어가겠다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그 길 끝엔 젖은 내 머리를 수건으로 훌훌 털어주시고 단정히 개켜진 옷가지를 준비해 주시는 엄마와 방바닥이 눅눅하지 않도록 아궁이를 지켜주시는 할머니, 그리고 아랫목 이불속에서의 노곤노곤한 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따뜻한 이불속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렇게 비에 흠뻑 젖어 집에 가면 날 반기며 내 머리를 털어주고, 갈아입을 옷을 다정하게 챙겨줄 사람이 있을까? 남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기대하긴 어렵다. 아마도 개구쟁이 삼 형제는 나를 보며 깔깔깔 웃어댈 것이고, 언제 혼났냐는 듯 이불속에서 엄마 옆자리를 누가 차지할지 비장한 가위바위보를 할 테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스르르 풀어내 버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나 지금이나 닮은 게 있다면 돌아갈 집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식구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달리고 나서 숨을 고르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처음보다 가벼워져 있음을 느낀다. 비록 비에 젖은 운동화임에도 말이다.

뜻하지 않게 빗속을 달린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 내 좁디좁은 마음이 더 클 수 있도록 만져주었다. 이제 조금은 넓혀진 나의 마음 주머니에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넣어 어루만져 줄 차례가 왔다. 가만가만 그 이야기들을 담아보아야지. 자주, 오랫동안 꺼내볼 수 있도록……


  ‘나와 함께 빗속을 달려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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