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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10. 2024

개미가 밥을 안 먹어요

너나 잘 먹으세요

 여기서 개미는 주식시장에서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아니고, 부지런함의 대명사도 아니고 단어 그대로의 개미이다.

동물 개밋과의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은 머리, 가슴, 배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허리가 가늘다. 대부분 독침이 없고 배 끝에서 폼산을 방출한다. 여왕개미와 수개미는 날개가 있으나 일개미는 없다. 땅속이나 썩은 나무속에 집을 짓고 사회생활을 한다. 전 세계에 5,000~1만 종이 분포한다.


 사전에서 알려준 1만 여종 중에서 내가 알기로는 3종이 우리 집에 서식하신다. 구매 내역을 보니 일본 왕개미, 노랑꼬리 어쩌고 개미, 한국 홍가슴 개미란다. 이들은 땅속이나 썩은 나무속이 아니라 공부하라고 놔준 인간의 책상을 점령하고 인간이 만들어준 자기들 만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고로 개미란 무엇인가. 과자부스러기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수백 마리가 몰려나와 부스러기를 협동하여 자기들 집으로 가지고 가는 종족들 아닌가. 이런 습성을 가진 애들을 설탕물 한 모금이라도 더 먹여보겠다고 끙끙 대는 인간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


 우연히 N 포털사의 1:1 상담 문의 내역을 보다가 안 그래도 침침했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세상에나 여러 개미용품 업체 사장님들과 내가 절친이 되어 있었단 사실에 기겁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개미 먹이에 대해서 문의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개미의 선주문 방법을 문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우리 집 최브르. 게다가 제법 어른스러운 문장으로 대화를 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배 뚜둥기며 누룽지 뜯어먹던 우리 집 그 아이가 맞나 싶었더랬다. 삼국지를 내가 알기로는 최소 5회 이상 완독한 아이의 문장력을 QnA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그나저나 이 개미님들이 좋다는 걸 갖다 바쳐도 먹반(먹이반응)이 없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미 먹이를 판다는 여러 업체를 수소문해서 후기를 꼼꼼히 읽고 판매자와 충분한 질의를 거친 후 구매버튼을 누르고 나에겐 결제비밀번호 화면만 넘긴다. 이 모든 걸 12세 최브르 독단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내가 성인이 돼서 개미 퇴치약이 아니라 종류별 개미 먹이며 개미 물통을 내 돈 주고 살 줄은 몰랐지. 정확히는 내 돈은 아니다. 최브르에게 정확히 현금으로 다시 받아낸다.


 남자아이 치고 곤충 좀 안 키워본 아이가 있겠냐만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거쳐 사마귀 2종은 몇 차례 탈피를 거쳐 성충이 되어서 책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고 사마귀 먹이로 밀웜도 수백 마리 거쳐가고 지금은 개미 3종까지 합세하여 곤충월드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사마귀 먹이용으로 샀다가 엄마의 모성으로도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특히나 더웠던 이번 여름에 베란다에서 폐사하신 벼메뚜기 50여 마리의 명복을 빈다.


 차라리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면 그나마 괜찮다. 사마귀를 위해 살아있는 메뚜기를 채집하러 한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그늘 하나 없이 온몸으로 그대로 받으며 잠자리채와 핀셋을 들고 동네 천변을 활보했다. 신기하게 잘도 찾아서 봐보라고 여기 있다는 메뚜기가 내 눈에는 절대 안 보여도 보인다고 리액션도 해줘야 한다. 득실득실한 모기가 얼굴로 달려들어 귀에서 앵앵거리던 산림욕장에서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연신 뿌려가며 장수풍뎅이를 잡으러 다니는 일은 정말 안 그래도 더웠던 올해 여름의 기억을 고난의 카테고리로 보내기에 충분했다. 한 번은 거실 바닥에 검은 물체가 기어 다니길래 본능적으로 슬리퍼 신고 있던 발로 번개처럼 빠르게 냅다 밟았다. 밟는 순간 등골이 싸했던 예감은 역시나 틀리지 않지. 책상에 살던 한 왕국의 병정이었던 것이다. 병정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슬퍼하던 그날의 최브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마다 속으로 외쳤던 말. "너.. 파브르가 안되기만 해 봐라."


 자기 관심사에 무섭게 집중하는 이런 아이는 뭐가 돼도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안다. 아무리 AI가 발전한다 한들 AI가 개미의 먹이 반응을 살펴 종류별로 밥을 주진 못할 테니까.(줄 수 있나?) 모든 위인들이 그랬듯이 자기 분야에 무한한 관심과 끊임없는 열정이 그 분야의 대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다. 그 뒤에는 그들의 어머니의 믿음과 희생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나도 미래의 파브르를 위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파브르도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자기 관심사에 에너지를 90% 할애하기에 그 외의 기본적인 활동에는 도통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간신히 학교와 수학학원 하나 정상적으로 다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 공부는 둘째 치더라도 운동, 독서 등 얼마나 할 게 많은가. 아직도 초보 엄마인 나는 쉽지 않다. 솔직히 불안하다.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곤충 월드가 된 책상을 보는 것도 성충이 된 밀웜을 거실 바닥에서 발견하는 것도 개미의 동면을 막기 위해 난방을 돌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도 나의 그릇이 간장 종지여서겠지.


 최브르야. 때 되면 개미가 아니라 네가 밥을 먹어야 하고, 비염인의 정석이라는 코를 가졌으니 훌쩍거리면 병원도 가야 한단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운동도 해야한단다. 엄마는 네가 곳에 미치도록 빠지는 열정을 항상 응원하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일 순위는 너의 건강과 행복이란다. 엄마도 너의 개미들을 사랑하도록 노력해 볼게. 그래도 가끔씩 그 월드 속에서 너를 끄집어내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하는 잔소리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엘사와 파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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