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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17. 2024

만능소보로, 프린터, 피아노 그리고 꽈당! -1

인생사 새옹지마를 느껴보다

#만능소보로 이야기

  만능소보로는 다진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간장 양념을 하고 달달 볶아서 냉동해 뒀다가 필요할 때 툭툭 꺼내서 볶음밥이나 국수 등 여기저기에 넣으면 영양 만점까지는 아니어도 80점은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만능아이템이다. 한 유명 블로거 님의 레시피로 애는 셋이지만 요린이 엄마가 세프인 우리 집 냉장고에서는 떨어져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다. 여기에 원물로는 절대 안 먹는 당근과 우엉도 믹서기에 윙윙 갈아서 같이 볶아서 만들어 두면 애들은 절대 모르지만 내 마음은 편안해지는 요물 아이템이다. 한 번에 마음먹고 대량 생산해 두고 아이들이 먹는 거의 모든 요리에 토핑으로 들어간다.

 이 만능소보로가 똑 떨어졌다. 쿠팡맨님의 도움으로 재료를 조달받아서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양푼에 1.6kg의 다진 고기를 재웠다. 저녁에 볶기만 하면 되는데.


출처: 아솜의 오늘의집밥 오늘 라방메뉴 설탕양 확 줄인 만능소보로.^^ : 네이버 블로그

#프린터 이야기

 나름 엄마표 육아를 했던 집에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필수품은 바로 프린터기이다. 2018년도에 육아휴직을 한 김에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엄마표로 키워보겠다며 장만한 컬러 프린터기 되시겠다. 그 당시에도 무선 출력이 되는 모델이 있었지만 무선으로 얼마나 출력을 하겠냐 싶어서 유선 출력만 되는 조금 저렴한 프린터를 구입하고 정말 많은 걸 뽑아댔다. 워크지, 문제집 아마도 거짓말 안 보태도 수 만장은 출력해 왔던 프린터였는데. 언젠가부터 정상적인 색을 뽑아내지 못한다. 그래도 더 버티며 쓰다가 아차 싶은 순간이 왔다. 큰아이 과학 기출문제를 출력하는데 문제에 나온 빛의 삼원색 그림에서 빨간색이 초록색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이것 때문에 아이가 빛의 삼원색 문제를 틀릴 수도 있다. 이제는 보내줄 때가 온 것이다. 때마침 인플루언서님께서 역대급 가격으로 프린터 공구를 열어주시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바로 다음날 무선 출력 성능까지 갖춘 신상 프린터가 우리 집에 왔으니 구 프린터는 폐가전수거함에 보내주어야 한다.  뭐라 하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세대주 모르게 빨리 바꿔치기를 하자. 사야될 이유는 타당하지만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기는 참 귀찮다. 한마디로 끝내는 거다.  "오빠, 이거 원래 있던 거야." 그런데 이마저도 필요없었다. 뭘 알아채야 알려주지.


#피아노 이야기

 우리 집 장남. 이 아이가 없었으면 정말이지 난 글을 못 썼을 것 같다. 어쩜 그리 매번 새로운 글감을 물고 와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지 신기하다.

이번엔 피아노를 구해 달라한다.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구해달라고. 연말에 반에서 음악회를 하는데 자기가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나 뭐라나. 여기까지만 읽으면 왕년에 피아노 꽤나 쳤던 아니 조금이라도 칠 줄 아나보다 하겠지만 이 아이는 단언컨대 14년 동안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쳐 본 적 아니 눌러본 적도 없을 것이다.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싫어서 피아노를 친다고 했다나 뭐라나. 유튜브 보고 연습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시험 끝나고 연습하겠다고. 알아서 할 테니 피아노만 구해 달라고. 와! 너의 배짱하나는 정말 존경스럽다. 피아노가 왕년에 반나절 만에 익혀버린 3X3 큐브 맞추기 같은 건 줄 아나. 며칠 연습하면 한 곡 정도는 마스터하는 리코더 같은 건 줄 아나. 피아노가 그런 영역이었으면 피아노 학원들이 왜 고개만 돌리면 보이겠니. 더구나 우리 집에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국민학교 시절 한 달 동안 바이엘 배우다가 그만둔 엄마뿐인데.

 그러다 운명처럼 동기작가님 이자 음악교육을 하고 계신 승주 작가님의 '피아노 배우기 전, 피아노 사주셔도 돼요.'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이제 타깃은 바뀌었다. 표면적으로는 장남의 요구지만 내면적으로는 우리 집 막둥이의 음악천재성을 끄집어 내보고 싶다. 나도 5분이라도 음악 천재 엄마로 살고 싶다.  특히나 '피아노 잘 치는 아이가 공부도 겁나게 잘한다.' 이 문장을 본 뒤로는 고민의 여지는 프린터랑 같이 분리수거함에 보내버렸다.

04화 피아노 배우기 전, 피아노 사주셔도 돼요 

(출처: 승주 작가님의 브런치 북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아서, 음악을 관뒀다')

며칠을 찾다가 운 좋게 당근에서 상태가 좋아 보이는 전자피아노를 무려 나눔으로 받기로 했다. 토요일에.

토요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역 동기 작가님들과 첫 모임이 있는 날이지만 피아노는 남편과 나보다 힘 센 장남이 들고 올 거니까 나는 상관없지.

출처. 픽사베이

연관성이라고는 1도 없고 나름 굵직굵직한 이 사건들이 한 날 바로 수요일에 이루어졌고, 모든 계획은 완벽했다.

프린터를 세대주 몰래 버리고 와서 재워 둔 만능 소보로를 볶아두고, 난 토요일에 우아하게 작가모임에 나가서 지적인 만남을 하는 동안 남편과 장남은 피아노를 들고 오면 됐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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