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시어머님과 며느리
가을날 아침 막내 어린이집 등원 준비 하는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시어머님의 대학 병원 진료를 모시고 가는 날이다. 아이를 거의 끌다시피 해서 등원에 성공했다. 뚜벅이인 나는 택시를 부르고 어머님께 내려오시라 한다. 택시가 오는 시간과 걸음이 불편하신 어머니께서 내려오시는 시간이 잘 맞아서 한 번에 타고 싶다. 택시가 먼저 와서 아파트 출입구를 막고 대기하는 상황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걸음이 불편하신 시어머님과의 동행이기에 매번 그런 상황이 생기지만 한 번도 불편함을 내색한 기사님도 입구를 막은 택시 때문에 클락션을 울리는 차도 없었다. 그냥 내 마음만 불편하다. 반대로 택시가 늦게 잡혀 어머님과 길바닥에서 몇 분(길어야 10분)을 기다리는 상황도 없었으면 좋겠다. 근데 오늘따라 택시는 2분 만에 도착했고 주차장을 힘들게 걸어 나오시는 어머님의 실루엣이 작게 보인다. 0.1초라도 빨리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으로 얼른 달려가서 한쪽 팔을 부축해 드린다. 입으로는 천천히 가셔도 돼요라고 하면서 부축한 팔에 힘은 더 들어간다. 겉과 속이 다르다의 교과서다.
따님이신가 봐요?
자주 듣는 말이었다.
기사님의 상투적인 첫마디를 대수롭지 않게 대답 반 무시 반의 의미를 담아 작은 목소리로 '네'라는 한 음절로 표현한다. 그런데 병원까지 가는 15분을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은 가을날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상투적인 인사가 아니었던 거다. 며느리들 험담의 물꼬였던 거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자마자 후다닥 뛰어가서 한쪽 어깨를 내어드리고 한걸음 한걸음 택시로 모시고 오는 모습을 다정한 모녀사이로 미화하신 기사님은 딸이 최고라고. 며느리는 이렇게 못한다고. 딸 가진 부모가 인생 승리자인 양 딸딸딸 하신다.
저 며느리인데요.
좀 전에 하지 않았던 대답을 제대로 해드린다. 순간 두 어르신들의 1초간의 정적은 나만 캐치했다.
기사님 나름의 손님 접대 멘트지만 딸 자랑만 하셨으면 한 귀로 흘렸을 텐데 며느리들을 싸잡아 못되고 이기적인 것들로 일반화하시니 듣고 있던 속 좁은 며느리 배알이 좀 꼬여버렸다. 워낙 말이 없으신 어머님께서도 듣기 불편하신 것 같았다. 딸보다는 며느리랑 더 많이 다니시는 어머님도 알고 보니 어느 집 며느리인 따님을 두신 기사님도 당황하신 게 분명하다.
"아 아이고, 효부시네. 복 받으셨어요. 어르신, 며느님한테 돈 좀 주셔야겠어요."
이건 또 무슨. 난데없이 효부상 받는 며느리가 됐다. 시간 되고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딸 대신 시어머님 병원 진료에 동행하는 게 효부상 수상 조건 항목에 있었나. 게다가 자기 딸은 둘째 며느리라고 첫째네가 안 지내는 제사를 도맡아 한다고 효부상 수상자를 한 명 더 추가하신다. 부모한테 잘해야 다 내 자식 복으로 돌아온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시고.
신호가 기가 막히다며 자신의 운빨과 운전 실력을 과시하시면서 엄청 빨리 왔다고 하시는 그 시간이 15분이 아니라 150분은 되는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른 수박 며느리는 앉아있는 방석에 갑자기 솟아난 잔가시가 까슬거려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사실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표현은 서투시지만 항상 미안하다 고맙다 하시고 매 번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괜한 늦둥이 손녀 핑계로 배춧잎 몇 장씩 내 가방에 쑤셔 넣어주신다. 나도 말로는 괜찮다고 안 주셔도 된다고 하지만 가방에 들어온 돈을 다시 빼서 어머님 가방에 넣어드리지는 않는다. 진짜로 아이한테 주지도 않고 내 통장에 들어갈 돈이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 푸르스름한 몇 장이 두 여자의 부담의 무게를 맞춰주는 역할이라는 걸.
가까이서 보면 온 맘 가득 효심이 넘쳐나는 모녀관계인데 한 100m쯤 떨어져서 보면 금전과 노동이 오가는 고용관계처럼 보이는 사이. 어머님과 나는 그 중간쯤 49m쯤에 있는 고부관계이다. 이 정도가 딱 좋다. 딸 같은 며느리는 아니지만 많이도 말고 1m 정도는 딸에 가까운 며느리이고 싶다.
가까이 보아야 아름다운 것도 있고 멀리 보아야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우리는 가운데서 봐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