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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렁이 Nov 05. 2024

미안하다 안 고맙다.

"장애인 괴롭히지 마!"

아들이 4학년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하교를 하고 놀이터에 갔더니

같은 반 친구들이 먼저 와서

놀고 있었다.

 아들은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갔고,

좋아하는 출렁다리 위에서 계속 뛰고 있었다.

"00아~이거 재밌어?"

여러 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어 함께 출렁출렁 발을 굴려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출렁이니 더 신이 났고 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흐뭇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아들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묘한 긴장감이 놀이터를 감싸게 되었다.

잡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혼자 집요하게 출렁다리를 출렁이는 아이.

바로 우리 아들.


아들을 잘 모르는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가 걸리적거렸을 것이다.

당연하다 빨리 잡고 빨리 도망가야 하는데 눈치껏 비켜주지 않고

 출렁다리 위에 떡 버티고 서있으니

빨리 지나갈 수가 없지 않은가.


그중 한 아이가 아들에게 저리 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방해가 되니 딴 데로 가라고 말을 해도

듣질 않으니 소리를 지른 것 같았다.


한번 불씨가 지펴지면 꺼질 때까지 무한반복을 해대는 특성이 나온 상태라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개입을 해야겠군'

상황을 주시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화가 난 친구가 아들에게 저리 가라며 거칠게 밀쳤다.

그때, 아들과 같은 반친구인 소미(가명)가 

바로 달려와 그 아이들을 가로막으며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 괴롭히지 마~~~~~~~~~!
00 이는 장애인이야!!!"


오 마이갓!

놀이터에 어색한 정적이 몇 초 흘렀다.


잠시 후

그 아이들은 무안했던지 입술을 삐죽 대며 자리를 떠났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마치 돈키호테처럼 미끄럼틀 위에 서있던 소미는

나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씨익 지어 보이고 있었다.

고마운데 하나도 고맙지 않은 이상한 이 상황.

일시정지된 뇌와 몸은 아무 리액션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아들이 발로 굴러대는 출렁다리의 쇳소리만이 놀이터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애가 있으니 장애인이라 부른 건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아직도 내가 우리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가?

아니 그것과는 별개로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고 지칭당하는 건 불쾌해.

왜지?

소미는 친구를 보호해 주려는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일 텐데 왜 하나도 고맙지가 않지?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 머릿속에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친구들에게 아들에 대해 잘 설명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그 일은 며칠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다 아들과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그 언니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해주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예를 들어 "뚱뚱한 친구 괴롭히지 마!" "키 작은 친구 괴롭히지 마!" "눈 작은 친구 괴롭히지 마!"

라고 하지 않잖아?

그건 당연히 기분 나쁠 것 같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 이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구나.

내 아이는 눈이 동그랗고 귀엽지만 배가 많이 나왔고, 말투가 아기 같고, 노래를 잘 불러.

그리고 자기가 잘 그린다고 생각하며 으스대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가끔 뜻대로 안 되면 드러누워 소리 지르는 고약한 똥고집이 있어.

그리고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지.

자폐는 내 아이가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특성 중 하나야.

내 아이를 자폐라는 단어,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로만 표현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지.

그래!

이래서 찝찝했던 거구나.


 친구들에게 우리 아들의 자폐적 특성에 대해서만 설명해 줬지

무수히 많은 다른 특성은 설명하지 않았던 거다. 이걸 놓치고 있었구나! 하고 이마를 탁 칠 수 있었다.


그 후 담임선생님께 아들이 집에서 그리는 그림, 따로 배우고 있는 드럼연주영상 등을 

클래스팅으로 보내드렸고 친구들에게도 아들이 보내고 싶은 것은 메시지로 보낼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감사하게도 담임선생님은 아들의 그림이나 연주영상들을 가끔씩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셨고,

 친구들도 아들의 다른 특성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다양한 주제로 종종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학교생활에서도 착한 친구들이 많은 학교라

아들에게 도움을 주고 대신해 주려던 친구들이

이제는 기다려주고 시범을 보여주며 스스로 할 수 있게 격려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연애초반에는 그 사람과 나와의 맞는 점만 찾으며 잘 맞는다 좋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안 맞는 부분을 찾으며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며 실망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따라 같은 사람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우리 아들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기로 마음먹으니 

단점이라 여겼던 특성들이 장점으로 바뀌는 반전도 생겼다.

같은 길로만 가려는 강박적 행동은 길을 잘 외우는 장점으로 발전되었고,

불안이 높아 변화를 힘들어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특성은

좋은 습관을 잘 만들어주면 알아서 유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일기 쓰기, 자기 전에 양치하고 책 읽기 등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챙기는 아이의 일상이 될 수 있었다.


사진출처 pixabay


세상에는 다양한종의 생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자연환경, 다양한 언어, 다양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것들이 참 많더라.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는 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가족이 같이 살지만 모두 같지 않듯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오히려 다르기에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장애인을 좀 더 다양하고 열린 관점에서 바라봐주는 일이 보편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무관심이 오히려 감사할 정도로

  지나친 동정, 또는 지나친 경계와 혐오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장애를 장애인이 갖고 있는 무수한 특성 중 하나로 인식하고 바라봐준다면

 그때부터 우리 사회의 편견이라는 단어도 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오길 꿈꾸며 우리 아들의 특성을

다양성으로 발전시키도록

  나는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장애는 틀림이 아닌 다다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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