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대한민국이 계엄령으로 뒤집어졌던 날.
우리 집만 비상비. 염. 령.으로 뒤집어졌고 남편과 나는 아들의 코막힘을 뚫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비염으로 고통받는 아들이 새벽 2시쯤만 되면
"코가 막혀요~~~ 너무 답답해요~!!"
하면서 징징거리다가 종국엔 돌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상황이 2주간 지속되던 밤이었다.
이미지 by pixabay 돌고래 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위에 윗집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아들의 비염에 우리 가족의 밤의 평화가 달려있었다.
언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식은땀이 나고 이게 공황증상인가 싶기도 하다가 겨우 잠이 들라치면 비슷한 시간 어김없이 아들이 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야만 했다.
무엇보다 새벽에 질러대는 고함이 이웃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웃분들께 너무 죄송한 마음에 더 잠을 잘 수없었고 사과 한 박스에 사과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게 우리 부부의 최선이었던 나날들.
비염약도 먹이고 면역에 좋다는 고가의 프로폴리스영양제도 잠을 위해 샀다.
코 위에 안대처럼 올려놓으면 따뜻해져서 코가 뻥뚤린다는 유기농 팥이 들어있는 코팩도사고
유명하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사정해서 코에 주사도 맞혔다 (원장님이 주사 맞을 정도는 아니지만 자폐소년이 참지 못하고 밤마다 답답함에 소리를 지른다는 상황을 들으시고는 맞춰주셨다) 비염고라는 한방약도 사서 발라주고 최적의 습도를 맞추기 위해 가습기도 틀어주면서 우리 집의 모든 시스템은 아들의 코막힘방지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했다.
아무리 환경을 세팅해도 막히는 그 작은 콧구멍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코막힘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남편과 나는 부모로서 무력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코막힘이 뭐가 그리 대수겠나 싶겠냐마는,
잠 못 자는 고통은 느껴본 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일반복되는 괴로움으로 나는 살이 3킬로나 빠졌다. 평소 체중변화가 별로 없는 나에는 큰 변화였다. 역시 다이어트에는 마음고생이 최고다. 다만 노화가 동반된다는 큰 부작용이 있다.
힘들어하는 우리를 위해 양가부모님들이 도움을 주셨다. 금요일밤은 친정에서 자고 토, 일 이틀은 시댁에서 아들을 봐주셔서 오랜만에 남편과 딸내미와 함께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아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했다.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반전이겠지만 할머니댁에서는 8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물론 새벽에 한번 깼지만 소리도 지르지 않고 혼자 코에 약을 조금 뿌리더니 다시 잠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녀석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구나 또 한 번 깨달았다.
학교나 다른 기관, 그리고 할머니댁에서는 참을 수 있지만 집에서는 도대체 참을 수 없는 아이. 그건 집이 제일 편한 공간이고 밖에서 힘겹게 참다가 돌아와 터져 나오는 아우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내하는 부모는 너무나도 지친다.
언제나 고난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럼 우리는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워서 성장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아들은 집에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지켜야 하는 적정선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불편한 감정을 부모에게 무작정 쏟아내는 것이 아닌,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독립적으로 할 수있도록해야한다는 것 말이다.
부모 또한 아이가 참아내는 그 과정을 옆에서 묵묵히 버텨주며 지지해줘야 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가 답답해하면 내 코가 막힌 것처럼 약을 대령하고, 연고를 발라주고, 따뜻한 물로 코를 문질러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 결국엔 부모가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동반하는 것이다.
이미지 by pixabay
우리 집만의 비상비. 염. 령. 에 빠져 나라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을 그다음 날 늦게 알아버린 나는 비슷한 맥락의 것을 느꼈다. 그동안 정치뉴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너무도 나라에 무관심했고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는 반성을 했다. 녹록지 않은 나의 삶을 살아내느라 나랏일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무관심한 방관자였다.
우리나라에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막, 그리고 진실은 알길이 없다. 하지만 이일을 통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는 조금 생각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관심 갖고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묵묵히 버티며 상황을 주시하고 조금 더 나라를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는 것.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어렵지만 말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어젯밤에도 아들의 비염으로 새벽 2시에 일어나 5시까지 잠을 못 잤다.
하지만 아들은 예전보다 소리를 덜 질렀고 엄마한테 코를 풀어달라 만져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스스로 진정하고 참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자폐소년을 보며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새벽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밝아오는 새벽별이 환히 비추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