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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마망 Nov 11. 2024

이토록 친절한 배우자

마흔의 그림책 이야기 _ <이까짓 거!> 박현주

제목: 이까짓 거!

글. 그림:  박현주

출판사: 이야기 꽃


초등학교 교실, 아마도 마지막 교시가 한창인 것 같은데, 창밖에 비 내리고 한 아이 고개 돌려 밖을 바라봅니다. 살짝 근심스러운 표정. 앞면지에 그려진 이 첫 장면을 보는 독자들은 십중팔구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아이 이야기구나!’ 할 겁니다. 맞습니다. 첫 그림만 보고도 짐작할 만큼 이런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 한두 번은 경험해 본 상황일 테니까요.

* 출처 : 예스 24





박현주 작가님의 <이까짓 거!>라는 그림책.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yes24의 책소개 글처럼

처음에는 우산을 챙기지 못한 어린 소녀 이야기로만 생각되어 가볍게 보기 시작하였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자세히 볼 록 가벼운 그림책이 아니었다.


그림책을 볼수록 의 모든 장면이 나에게 인사이트를 주지만, 특히 더 생각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바로 그림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 딱 봐도 아주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홍준호.

노란색 줄무늬 티를 입은 홍준호는

온통 무채색  빗줄기 에서의 한 줄기 '희망' 같다.


우산을 같이 쓰자는 말도 거절한,

결핍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던 그 어린 소녀에게 나타는 준호.

준호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냥 그 빗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어간다.


문방구까지 달렸다.

준호가 말했다.

"다음은 편의점까지, 경주할래?

지는 사람이 음료수 사주기."

돈이 없다고 말하려는데,

"준비, 땅!" 준호가 외쳤다.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주저하던 주인공 소녀에게 손을 내민다. (물론 직접 손을 내민 것은 아니다.)

그런 준호 덕분에 소녀는 그 세찬 빗 속을 웃으며 뛰어가게 된다.


나의 홍준호.

내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손 내밀어 준 홍준호는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14년 간의 결혼생활로 비록 감정 무뎌고 지금은 무덤덤 한 곳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나의 남편. 쩌면 지금은 '남의 편'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그가 바로 나의 홍준호다.

그때는 그랬다.


우울하던 나의 20대 시절.

결핍을 원망만 하던 20대 시절.

결핍을 온몸에 두르고 누가 나를 건드릴까 두려워 고슴도치같이 날을 잔뜩 세우고 있던

유일하게 긴장을 풀 수 있었던 사람.


상처받았던 마음을 녹여주던 사람.

그냥 그 자리에서 늘 웃어 주던 사람.

비 오는 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무작정 나를 기다려 주던 당신이 바로 나의 홍준호였음을

이 책을 통해 잊고 지냈던 이제는 다소 희미해진 기억. 나를 따뜻하게 해 주었던 전의 그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그런데 나의 홍준호도 늙었다. 그리고 지쳐 보인다.

소녀에게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주고 홀연히 학원으로 가버린 홍준호는 지금은 많이 변해버렸다.

마흔의 홍준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 어깨가 유독 무거워 보이는 요즘이다.  

"다음에 갚아"

이제는 내가 편의  홍준호 돼 보려 한다.

그에게 위로받고 그에게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새찬 비가 요즘 멈추질 않는 우리에게 내가 남편의 홍준호가 되어본다.

"이제 미미분식까지 내가 뛰어가자고 할게"



다시 당신이 내 홍준호가 될 수 있도록, 그동안은 내가 애써볼게


하지만,

당신의 40대가 지나기 전에 다시 나의 홍준호돌아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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