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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아들 향한 고해성사

by 세인트




밤톨처럼 귀엽고 영롱했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한 생명체를 열 달간 품고, 숨쉬기도 걷기도 힘들어 이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싶을 때쯤,

신기하게도 진통이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 머리가 큰 편이라며, 진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무마취로 아들 나오는 길을 더 터주었다. 진통은 폭풍처럼 밀려왔고 2시간 만에 출산을 했다. 하체는 얼얼했지만, 격한 운동을 마친 것처럼 시원하게 회복실로 이동했다.

친정 부모님은, 새벽시간에 수고하신 병원 선생님들께 치킨을 돌리시며 벅찬 감동과 기쁨을 쏟아내셨다.

양쪽 집안에 태어난 첫 손주였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IMG_4840.JPG 아들 _ 3살









지금 아들은 고2를 보내고 있다.

훌쩍 커버려서 나를 내려다보는 아들.

애정결핍에 허그를 요청하는 엄마를 밀어내는 아들.

돌변하는 엄마의 감정놀이에 속지 않겠다는 듯 눈빛을 피하는 아들.


다들 자식 어떻게 키우고 계신가요?


원래 어려운 거 맞죠?


소위 서울에 서성한, 중경외시 등등

자녀를 유명한 대학에 보낸 지인분들은 왜 죄다 내 주변에 있는 걸까.

내일모레면 고3이 되는 우리 아들은 아직도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인 것 같은데.

부모로서 내가 뭔가 잘못 가르친 건 아닌지.

좀 더 어렸을 때부터 푸시를 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복잡한 마음으로 괴롭다.

그러다가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야말로 공부머리를 타고나지 않았고, 극복해 보겠다고 죽을만치 끈기를 부려 본 적도 없지 않나.

그만그만한 유전자를 물려줘놓고, 기댓값을 높여 부른다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다.

수능 보는 날조차도 결과가 어떻든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한다.

수능이 전부는 아니라고, 또 기회는 만들면 되는 거라고.

왜 수능처럼 심장 쪼그라드는 제도를 만들어놓고는 어설픈 용기와 위로를 하는지 모르겠다.

결과가 안 좋아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또 그런다.

대학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래놓고 어디 대학을 졸업했냐로 대우가 달라지지 않나.

물론, 얼마나 성실했는가, 치열하게 그 시간을 채웠는가 가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끊임없이 아들에게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는 모습이 안쓰럽다.

지난밤 쏘아붙인 독한 나의 말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


그래, 그렇다는데...


"그런 고민할 시간이 어딨어, 지금은 그냥 하라는 대로 공부할 때라니까!!"


이렇게 말해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조급한 마음이 고3 뺨친다.

니 인생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협박 같은 말로 소리치곤 한다.

언행불일치다.

알아서 하라면서 계속 참견한다.


나야말로 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2년 전 우리 즐거웠지?














이 터널이 지나면 우리 또 즐거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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