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지금 제 마음을 채운 단어들을 정리해 봅니다. 2025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함께 마음의 단어를 떠올려 보실래요?
2024년의 단어 : 부럽다. 부끄럽다. 부담스럽다. 2025년의 단어 : 그럭저럭, 얼렁뚱땅, 시시하게
부럽다 : 자신의 삶을 멋지게 써 내려가고 있는 작가님들 부럽습니다.
이렇게 성실한 사람들을 또 본 적이 있던가요. 브런치 세상에는 대한민국 상위 몇 프로의 사람들만 살고 있는 듯합니다. 어찌나 열심히 살아가고, 그리고 그것을 글로 차곡차곡 담아가시는지요. 그 내용도 정말 훌륭하여 놀랄 노자 연발입니다.
잘 뽑아낸 제목과 그에 못지않은 살아 있는 글은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더라고요. 밀도 있는 작가님들의 글과 달리 성글게 엮어진 저의 이야기는 칠칠맞게도 하고픈 말을 주르륵 흘려버리기 일쑤입니다. 내 글도 한 번 찍어 먹어 봅니다. 음, 싱겁네요. 새콤달콤한 맛으로 성실히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부럽습니다. 잘해도 안될 것 같으니 쉬어가자는 마음이 자꾸만 손짓하네요.
부끄럽다 : 끝까지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일까 걱정이네요.
제가 싫어하는 저의 모습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두둑한 뱃살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버럭대는 모습도 아닙니다. 바로 시작만 잘하고 끝까지 해내지 않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많은 것을 그렇게 중간에 포기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부끄럽네요.
2024년 저는 읽기, 쓰기, 운동을 진심으로 시작하였어요. 시작할 때에는 저답지 않게 에너지 풀충전 상태였음을 고백합니다.(본래 텐션이 매우 낮은 편)일상을 살며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미션을 완수하고 싶어서 그야말로 발버둥을 쳤습니다.
지금은요? 얼렁뚱땅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습니다. 틈틈이 유튜브로 옆집 엄마 브이로그도 보고, 새벽 시간의 생산성을 포기하고 늦은 밤 맥주도 한 잔씩 합니다. 소파에 누워 인터넷 기사 읽으며 시간 죽이기 말해 뭐 하겠어요.
부담스럽다 :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저는 왜 자꾸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까요. 남탓하지 말자구요. 저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잘 해내고 싶다는 부담감으로 가득 찬 저 자신입니다. 순위 안에 들어 합격 목걸이를 받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별로인 글을 써낸다고 해서 브런치 운영팀에서 '이제 그만 쓰시죠'하고 쫓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닐 텐데 말이죠. (맞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대문호 헤밍웨이의 말을 애써 떠올려 봅니다. 시작은 당연히 볼품없다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잘해내고 싶다', '아 맘에 안 들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마침표로 향하는 여정을 자꾸만 방해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세상을 놀라게 할책을 쓰는 것도 아닌데 부담감에 한 발자국 떼는 것이 망설여집니다.
출처 : 픽사베이
얼렁뚱땅, 그럭저럭, 시시하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얼렁뚱땅 : 어떤 상황을 얼김에 슬쩍 넘기는 모양. 그럭저럭 :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로. 시시하다 : 신통한 데가 없고 하찮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사실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바로 어느 날의 대화에서 불쑥 찾아온 '얼렁뚱땅'이라는 단어 덕분입니다. 평소에는 참 좋아하지 않는 말입니다. 저는 '제대로' 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항상 내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하려 노력해 왔고, 잘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잘 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결과가 늘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어요. 그 마음 때문에 자꾸만 중단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인지도요.
이제 제 스스로 어깨 위에 척척 올려 두었던 부담감을 내려놓을까 합니다. '얼렁뚱땅' 살려고요. 글쓰기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지요. 잘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해내는 시간을 견뎌볼까 합니다. 완벽을 꿈꾸다 발견한 틈 때문에 실망하기보다는, 근근이 해 나아가는 저 자신을 응원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시시하더라도 뭐 어쩌겠어요. 그게 나인걸요.
빠른 결과를 바라는 아이들에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너 너무 도둑놈 심보인 거 알아?' 생각해 보니 제가 딱 그 짝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쌓아 온 다른 사람의 시간은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나가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저 사람만큼 잘하고 싶다는 생각. 딱 도둑놈 심보입니다. 그것도 소도둑.
이제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버립니다. 저는 쓰기 시작한 지 50여 일, 발행한 글이 20편도 안 되는 병아리 작가입니다.(사실 작가라는 말도 부끄럽지만, 합격 메일에 써져 있었거든요 후후) 잘 쓰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 욕심내지 않으렵니다. 확보된 독자가 한 명은 있잖아요. 바로 첫 번째 독자인 나 자신이요.
2025년, 새롭게 도전하는 일에서도 항상 초보일 뿐이라는 것 기억하겠습니다. 15년 동안 하던 일을 내년에도 하겠지만, 매해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하니 그것도 시행착오가 있겠네요. 네 그것도 각오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엄마로 살아가겠지만 나는 익어가고 아이들은 자라나니 그것도 새로울 겁니다.
2025년에는 얼렁뚱땅, 그럭저럭, 시시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렵니다. 찬란한 결과를 바라며 채찍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중단하지도 않겠습니다. 하다 보면 또 중간중간 구멍이 나는 순간들도 오겠죠. 하지만 읽고, 쓰고, 운동하며 찍어 간 작은 점들이 언젠가 가느다란 선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선들이 나만의 길을 그릴 거라 믿습니다. 희미하지만 오래가는 빛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