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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Oct 31. 2024

나도 한때는 정년이었다

성장에는 좌절이 필요하다

남편의 티비 사랑이 못 마땅해 티비를 없앤 적도 있었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 티비를 켜는 그 뻔한 루틴 때문에 나름 특단의 대책을 세운 거였는데 불과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스탠드 바이 미를 주문했고, 어느새 그가 가장 애정하는 넘버 원 보물이 되었다. 

티비를 보는 남편 옆에서 당당히 책을 펴놓고 읽다가 나도 모르게 드라마의 유혹에 빠져버렸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년이.


맞다! 내가 바로 정년이었지. 




25년 전 똑 단발의 중학생이었던 나는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반해 호기심만큼은 강한 편이었다. 특기적성 활동으로 다양한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가야금을 택했다. 전통 악기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레솔라 레미솔라시 레미솔라 12줄의 현악기 가야금을 배우게 됐다. 단단하게 꼬인 명주실을 손가락으로 뜯고 누르고 튕기다 보니 오른쪽 검지 손가락엔 물집이 꼭 잡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물집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르기도 했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이고 다시 물집이 생기기를 반복했는데 두껍고 거친 명주실에 적응할 만하면 세 시간짜리 수업이 금세 끝났다. 특기적성 수업은 그 달의 마지막주 토요일에만 있어서 12줄 계이름도 헷갈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내 실기 대회를 앞두고 가야금 병창으로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의 플랜이었다. 12줄도 헷갈리는 마당에 가야금을 튕기며 노래까지 부를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피할 수 없으니 별 방법이 없었다. 있는 힘껏 불러 보는 수밖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저 배꼽 밑에서부터 끌어올린 나의 영혼을 담은 목소리가 통한 건가. 호랑이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민요에 더 어울린다며 나를 민요 연습생으로 발탁했다. 그날부터 평일에도 가야금 학원에 들러 민요를 배웠는데 내가 선생님께 받은 곡은 경기민요 <날아든다>였다.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음계가 적힌 악보도 없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그대로 가사를 외우고 음을 기억해 불러야 한다. 선생님의 북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그야말로 입에서 입으로 따라 부르는 것이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외우고 불렀다. 이제껏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데 민요에 어울리는 목소리라니 나도 모르는 나의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 걸까. 내가 흙 속의 진주였던 걸까. 착각이 확신으로 바뀐 건 학원에서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연습 중이던 나를 불렀다. 방으로 들어가니 학부모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도 계셨다. 갑자기 나더러 연습 중이던 민요를 불러보라며 북으로 장단을 맞췄다. 이번에도 뱃속 저 아래 깊숙한 곳까지 힘을 끌어 모아 우렁차게 불렀다. 

1절이 끝나자 선생님은 민요를 부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정도나 한다며 나에 대한 치하인지 잘 가르친 본인에 대한 극찬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어쨌거나 나는 선생님의 칭찬에 잔뜩 바람이 들어갔다. 드디어 내 길을 찾았다. 내 길은 장인의 길, 경기 민요 이수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민요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당시 우리 집은 한옥을 리모델링한 단독주택이었는데 소음에 취약했다. 혹시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싶어 옷으로 가득 찬 서랍장을 열어 머리를 틀어박고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의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나의 재능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나는 엄마의 낡은 옥색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와 어설픈 화장을 한 채 세 명의 심사위원 앞에 앉았다. 옆에는 호랑이 선생님이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고수 역할을 해주었다.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몹시 떨리고 긴장이 됐지만 목청껏 불렀다. 무엇보다 나의 맞은편 오른쪽 세 번째에 있던 중후한 심사위원의 훈훈한 웃음과 박자를 맞추는 듯한 손가락 제스처가 나를 향한 응원과 격려 같았다.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벌써 나의 1호 팬이 생긴 걸까. 없던 흥이 절로 나는 것 같았다. 그래, 지금처럼만 부르면 된다. 흥분을 억누르고 보다 더 크게, 더 신나게 불렀다. 


드디어 대회가 끝났다. 이번엔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도내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전국대회 준비도 해야겠지.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기다렸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안 그래도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매가 1센티나 더 위로 올라간 것 같았다. 갑자기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결론은 내가 엉망진창으로 불렀다는 것. 신나게 부르다 신나게 말아먹은 것이다. 좀 전만 해도 방방 하늘을 날던 나는 날개가 꺾인 양 하늘 위에서 지하 끝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렇다면 아까 본 중후한 신사의 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게다가 내 옆엔 우리 엄마까지 와 있었다.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오지게 혼나는 모습만 본 셈이다. 당혹함과 창피함,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그 후 오랜 시간 괴로웠다. 이따금 그때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땐 하찮은 이불만 발로 뻥뻥 걷어차며 이불 킥을 했더랬다. 


정년이가 성장하는 드라마를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살포시 겹쳐본다. 누구나 성장하기 위해 실수도 하는 거라고, 좌절도 겪는 거라고 정년이가 보여주고 있었다. 15살의 나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이제 정말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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