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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롭게 Oct 28. 2024

평균나이 80대 수강생분들과 미술로 소통하는 시간

화요일 미술시간


어머님들과의 미술시간


화요일 미술시간이다.

오늘은 김창열 화가의 물방울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물방울의 의미 작품이 주는 느낌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며 각자의 방식대로 그려나갔다. 김창열 화가는 전쟁을 겪으며 폭탄투하와 사람들의 피, 죽음 등을 접하며 그 상처를 물방울로 표현했다. 어머님들은 이 작품을 보며 핏방울 같아요.라는 이야기도 하시고 나도 6.25 전쟁을 직접 겪었어요. 여기로 그래서 이사 온 거예요. 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작품을 보시고는 가로로 할지 세로로 할지 연구에 들어가신다.


" 나는 세로로 그릴 거야.", "나는 가로로 그려야겠어.", " 나는 먹지에 대고 그릴 거야. "

"선생님 이게 맞아요?", " 이거 어때요? "




평균나이 80대이신 어머님들과 함께하는 시간.

정확한 나이는 여쭤보기가 죄송스럽다. 숙녀의 나이이기에...

어머님들은 항상 어여쁘게 하고 오신다.


가장 예쁜 구두와 그날에 어울리는 스카프를 착용하시고는 꽃무늬 재킷, 블랙 재킷 등을 입고 오신다.

처음에는 꾸미고 오시는 것을 몰라봤다. 어느 날 보니 올림머리에 진주귀걸이 진주목걸이 진주헤어핀까지.. 내가 몰라봤구나.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나와는 40 정도 나이차가 나는데 매번 "선생님~"이라고 따뜻하게 불러주신다.


미술시간은 2시에 시작한다. 1층에서 하는 노래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분 한분 분주하게 2층 교실로 올라오신다. 음악과 사물놀이로 지역대회에 참가하여 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신 어머님들은 조용한 미술시간도 좋아해 주신다. 좋아시는게 맞나 의아하기도 했다. 난 복지관에 있는 다른 수업을 참여하다가 어머님들이 미술을 좋아하셔서 복지관 팀장님의 제안으로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미술 수업을 하게 되었다.

나의 본업은 디자인이다. 디자인과 미술! 방과 후 미술수업을 가고 있다. 엄마가 된 후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첫 수업. 어머님들의 첫인상은 떨림 그 자체였다.

쟤는 먼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봐주셔서 당황... 그림실력을 몇 번 보시 더니 이제야 인정받은 모양이다. 첫 세 시간은 그렇게 살얼음판처럼 평가의 시간이 되었다.




" 미술은 맞고 틀리고 가 없으니 자유롭게 편안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씀드리지만

똑같이 그리는 그림을 선호하신다. 창의적으로 해보세요.라고 하면 불편해하신다기보다는 싫어하신다.

이런 표현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꾸밈없이 얘기해 주시니 감사하다.

나는 창의적인 수업을 좋아하고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재료는 스케치북 연필 수채화물감 아크릴은 1년에 2번이나 할까 말까 하다.

1년 이상 묵혀둔 캔버스를 수업 때 써도 된다길래 사용 중이다. 올해 두 번째 아크릴화에 도전하고 계신다.

화가의 작품, 멋진 그림을 보고 그리시는 것을 선호하신다.

사진을 보고 건물의 소실점을 배우며 건물그림을 그려보는 수업을 가졌다.

벽돌이 무한개.. 소실점을 생각하여 기본 스케치만 하면 되는 수업이었는데 역시나 성실함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으시며 30센티 자를 대고서는 70프로를 완성해 버리신다.


기본스케치는 어려우신 어머님들. 스케치북에 본그림 스케치를 하는 2단계 작업을 시작했다. 곡소리가 나온다. "너무 힘들어요."  하시면서 80~90프로 완성해 가시는 80대 어머님들...

어머님들의 재능은 끝이 없으시다. 난 늘 칭찬한다. 거짓이 없는데 믿지 않으신다.

미술은 점 하나만 찍어도 의미를 담으면 작품이 되기에. 잘했다. 못했다가 없다.

음악 쪽에 계신 분들은 의아할 수도 있겠다도 싶다.

음계하나만 틀려도 감점이기에....;;;(?)

(이건 나에게 해준 어느 지휘자님의 말씀이시다.)


몸살로 너무 아팠던 날이 있다.

그날 쉬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정말 고민이 많았다.

코로나만 아니면 가야 했다. 코로나여도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정도로 어머님들은 진심이셨다.

한 어머님이 한주를 쉬셨는데 그 다음 주 다리를 쩔뚝거리며 들어오셨다.

"저번에 다리를 다쳤는데 내가 이수업은 듣고 싶어서 나왔어. 병원에서 쉬라고 했는데 말이야.. "

우리 강의실은 2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문턱도 넘기를 힘들어하셨고 의자에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겨워 보이셨다. 내가 잘해서가 아닌 미술이 주는 힘이 있기에 오신 거구나 싶었다.


미술을 하는 시간은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함에 이른다. 선을 그리다 딴생각을 하면 다른 곳으로 가고 붓터치를 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그어지고 만다. 어머님들의 그림실력은 거의 화가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미 화가이신 어머님들이셨다. 내가 가르쳐도 되는 건가도 싶었다. 하지만 이 고요한 시간을 참 좋아해 주신다. 이 시간을 통해 치유받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란다.

한 어머님께서는 "미술시간은 참 빨리 가.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리는 이 시간이 참 좋아." 라고 하셨다.

한평생 살아오시며 모든 일이 좋기만 했을 수 없기에 어머님의 인생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인생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어머님들은 색을 섞고 만드는 과정을 어려워하신다.

물감이 아깝게 낭비되는 것만 같아 걱정이 많으신 것 같다. 생각을 읽어드리고 말씀해 드리는 것도 나의 일이다. 계속 섞어보고 테스트해 봐야 알 수 있는데, 테스트 종이 한 장 낭비되는 것도 아까워하시는 듯하다. "연습해 봐야 알 수 있어요." 라고 얘기하지만 어머님의 생각도 존중해 드리는 편이다. 내가 종이를 한 장 갖고 여기저기 테스트 컬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리러 다닌다. 앞에서 한 번에 보여드리면 좋으나 한 곳에 모이셔도 잘 안 보이신다고 하신다.


15명으로 수강인원 제한이 있었는데 올해는 25명이 되었다.

빠지는 어머님들도 계셔서 현재 실인원은 18-20명 정도이다. 보통은 복지관에서 인원을 더 받지 않는다. 강사의 OK가 필요하다. 나는 하고 싶은데 못하고 서성거리를 어머님들을 보았기에 OK를 하고선 1시간 반동안 서서 여기저기 다닌다. 오늘하루는 오전 2시간 오후 1시간 반 서서한 수업이다.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기진맥진하다. 조금의 서투름으로 서운함을 드릴까 봐 마음을 되도록이면 다하고 오려고 애쓴다. 최선을 다한 하루는 나에게 보람으로 다가온다. 어머님들께 나의 작은 미술지식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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