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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소복복 Nov 11. 2024

우리 슈퍼 사장님, 우리 엄마

엄마~~~ 콩묘 얼마고??

바야흐로 2000년, 대학교 시절 서울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방학 동안 엄마를 도와 드리기 위해 종종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꾀나 큰 종합병원이 바로 집 앞에 있었는데 덕분에 엄마의 우리 슈퍼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엄마, 아빠 두 분 만으로  20시간 가까이 되는 장사를 하시기엔 힘에 부치셨고, 동생의 도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방학 때라도 내려가서 가게나 집안일을 도와 드리곤 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이번 방학은 엄마 제대로 도와드리고 욕은 안 먹고 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난 1학년을 마치고 부산에 도착해 오랜만에 부산역 지하철로 향했다. 서울과 달리 한적한 느낌이 드는 지하철 역사 안, 일 년만이라 그런 건지 서울에서 늘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다녀서 그런 건지  새삼 새로웠다. 그리고 다가오는 지하철을 올라탔는데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은 조용하고 아늑함이 느껴질 만큼 편안했고, 한편으로는 장난감처럼 작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엄마~!! 부산 지하철은 진짜 좁드라~~!!” 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니~~는 부산서 20년 가까이 살아놓고 그거 꼴랑 1년 서울 있었다고 부산 지하철이 머~어?"

“가시나 지랄한다, 까불고 있네!!”

‘아!! 뭐가 잘못되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한 마디에 있는 욕, 없는 욕 다 듣고 나서 눈째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번 방학엔 욕 안 먹기로!!




했으나 인생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던가. 결국 일은 벌어졌다. 그것도 제대로 욕 얻어먹을 일이. 엄마와 동생이 잠시 가게 구석에서 식사를 하는 사이 계산대를 맡았다. 그새를 못 참은 손님이 걸어 들어온다. 병문안 손님들 덕분에 우리 가게 매출 상위권을 지키던 상품은 음료수, 두유 종류였는데 그날 그 손님의 선택은 두유였다. 두유 박스를 손에 든 손님이 가격을 묻는다. 내가 어찌 알겠노. 지금처럼 바코드 입력이 다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가뭄에 콩 나듯 한번 내려와 계산대 앞에서 졸다 올라가는 게 전부였던 내게 가격을 묻는 딱한 손님이라니. 구석에서 바쁜 숟가락을 놀리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콩 묘 얼마고??”

 내가 부르면 밥 먹다 말고 온 식구가 긴장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물어봤다.

엄마와 동생은 밥 먹다 말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너무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서는 되물었다.

“머라꼬??”

그래서 나는 “콩묘, 콩! 묘!!" 맨 날 음료수 파는데 콩묘도 모르나 싶어서 이번에는 큰 소리로 외쳤다.

“두유인데, 콩묘라고 써있는거~~~~~!!!”

잠시 정적이 흐르고..



“머라카노?? 우리 집에 그런 게 있나?”

쎄 함이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급한 마음에 “여기 있네, 콩 묘 두유” 하며 두유박스를 가지고 엄마 앞으로 달려갔다. 

손님 계시는데 당황한 엄마는 밥 숟가락 얼른 놓고 눈을 부릅뜨고 소곤소곤 욕을 하시며 나오셔서는  

손님께 “우리 딸이 오늘 서울서 내려와가꼬 뭐 잘 몰라서 저래한다 아입니꺼~ 오홍홍홍”

“만원 입니데이~~!!” 하고 얼른 계산을 하셨다.

나는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하지만 곧 ‘또 욕을 먹겠구나’ 싶었고, 쫌 창피하기도 했다.

그렇게 손님을 보내드리고 엄마는 여지없이 나에게 또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으셨다.!!

“대학씩이나 다니는 놈이 콩 ‘두(豆)‘자도 모리나?”

“콩묘가 머꼬? 콩묘가~~!! 아이고~야, 챙피시릅따!!”



“한글이 아니네………..”나는 조용히 소심하게 대답했다.

지켜보던 남동생은 “콩묘란다. 콩묘~~~!! 아이고, 니 대학 어디로 들어갔노??”

라고 말하고는 옆에서 배꼽 빠지게 웃고 있었다.

“우헤헤히호후하히헤호” 얄미웠다.

휴~~! 하필 그걸 사셔서 

결국 한동안 나는 "콩묘"라 불리며 우리 가족의 웃음 버튼이 되었다.  




 

(출처)한미식품  

그때 문제의 그 두유이다. 이제는 나오지 않지만 남동생이 찾아서 보내줬다. 그리고 그리운 그 시절을 다시 이야기하며 실컷 웃었다. 나는 나로 인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웃는 모습이 그렇게 좋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온다. 이제는  친정 식구,  시댁식구, 나를 엄마라 부르는 아이들이 있는 지금 여기,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3세트나 되지만 나는 아직 우리슈퍼 사장님, 우리 엄마를 찾는다. 나는 유튜브는 할 줄 모르지만 가끔 일기는 쓴다. 가끔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나의 엄마를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남겨보고자 한다. 내가 받고 있는 엄마의 사랑과 지혜를 글로 남겨 나의 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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