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저희 집 아이들도 여느 집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자는 자주 접할 일도 없고, 좋다 싫다 할 호불호조차 없는, 무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엄마가 한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엄마가 한자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오빠는 동생에게, 동생은 오빠에게 서로 엄마를 떠 넘기며, “네가 엄마 이야기 들어드려라”라며 도망 다니고 엄마를 멀리하기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자신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솔. 직. 히. 처음엔 가르치려는 의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네네, 솔직히 인정합니다. 애들이 그렇게 눈치가 빠른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족평화를 위해 눈치 빠른 아이들과 사이가 더 멀어지기 전에 전 그냥 혼자만의 사랑놀이를 즐기기로 했지요.
그러나 혼자 놀며 배운 한자는 알면 알수록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고 내가 자꾸만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점점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한편 그러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노출이
되었고 저희 집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 둘째가 아파트 안내 방송으로 ‘참조(參照) 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듣고
“엄마, 참고(參考)를 잘 못 말한 거야? 아니면 참조라는 뜻이 따로 있는 거야?”라고 질문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 말이 들렸어?!” 진심으로 놀라고 기특해서 “그래, 같이 찾아보자.” 기쁜 마음으로 같이 사전을
찾아보고 엄마와 말놀이를 하듯 그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입장에선 그 과정이 그냥 공부처럼 느껴지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적어도 ‘한자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용되고 한자를 알면 그 단어의 뜻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듯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냥 한자를 좋아했을 뿐인데 우리 아이도 한자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따로 시간 내어 공부한 것도 아닌데 조금씩 어휘가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모습을 보며 꼭 학원을 다니거나 문제집을 풀지 않아도 아이들과 한자를 익히고 학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어 학습이 “영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듯이 한자 학습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가 영어라는 언어를 이용해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는 것의 “수단”이라면
한자 또한 옛 어른들이 한자를 왜 그렇게 만들었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지, 한자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많은 한자를 달달달 외우고 급수를 따고, 따라 쓰는 것이 한자 공부의 목표가 아니라 한자로 적혀 있는 훌륭한 글들을 읽고 배우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스스로 한자를 익히거나 학습하기에는 조금은 이른 그 무엇인가가 한자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만이 느끼고 납득할 만한 삶의 지혜 같은 것이 한자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족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만족이라는 글자에 왜 발족자가 있는지 아시나요? 자신이 걸어온 길,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 잠깐 발을 멈추어 서서 그 성장함, 발전함의 차이를 발견한 사람만이 만족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 현재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어제의 나와 비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만족인 것입니다. 즉, 만족은 멈추었을 때만 보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노트에 만족이라고 100번을 써본들 만족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한자는 어른이 먼저 공부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럼 천천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집의 사례처럼 엄마가 먼저 사랑에 빠져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자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자주 보는 것입니다. 그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속에 젖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혹시 엄마의 의도를 알아채고 도망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처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요. 엄마가 진심으로 한자를 좋아하고 사용하고 자주 보면 우리 아이 **한자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국어 어휘력, 독해력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와 같이 대화하고 엄마와 같이 말놀이를 그저 즐겁게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깊은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한자와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