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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름 Nov 10. 2024

K-고3맘입니다.

수능을 앞둔 어느날의 고백

"엄마...죄송해요..."
그렇게 말하고 공중전화 속 아들이 너무 아프게 흐느낍니다.
동시에 제 가슴도 그날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들은 기숙형 고등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맹모삼천지교의 실천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진 않지만 근처에 자사고가 하나 있습니다. 동네에 있는 그 자사고를 인근의 많은 학생, 학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모두 그 학교를 목표로 공부합니다. 학원 원장선생의 달콤한 가스라이팅으로 시작되는 고입은 점점 본인이 정말 가고 싶은 건지 세뇌를 당한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그 조류(潮流)에 휩쓸려 학창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중3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합격 발표가 있던 날 아들은 너무 기뻐서 울었습니다.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으로 시작되었다 해도 아이의 마음속에 목표라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합격이라니. '아, 나는 해내는 사람이다'라는 성취의 맛을 그날 처음 진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무엇을 생각하던 생각한 것 이상의 상상과는 다른 고등학교의 생활이 시작되었더랬습니다.



중학교 때도 사교육을 많이 받진 않았지만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양식)와 핸드폰을 반납하고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교칙이 있는 학교임에도 아이는 **고 학생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즐거운 고등1학년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엄마품을 떠나는 것이 아들에게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었던 것 같고 한 달에 한번 집에 오면 세상 천사 같은 엄마로 변한 다정한 엄마가 너무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엄마랑 따로 사는 게 꿈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 달에 한번 만나니 아들의 예쁜 모습만 보이는 안구 교체 수술을 한건 아닌지 저도 또한 제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분명 하루에도 수십 번 지적질하고 게임하는 모습이 제일 못 마땅해 눈 흘기는 딱 아직 초등 졸업을 못한 수준의 중학생맘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첫날 저녁에 아이 학교 내에 있는 공중전화로 콜렉트콜 수신자부담 전화가 왔습니다. 군인들이나 쓴다는 그린비를 저도 처음으로 깔았습니다. 처음부터 아들이 울지는 않았는데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덩치는 산만하고 동네에선 엄마 손도 안 잡아주던 시크하던 우리 아들이 참아온 눈물을 떠트리고 한참을 죄송하다고 울었던 것 같습니다. 성적이 뭐라고, 성적 때문에 왜 엄마, 아빠에게 죄송해야 하는지, 안아줄 수도 없고 얼굴도 볼 수 없으니 더 애가 타는데 뒤에 줄이 길게 선 공중전화라 간단히 통화하고 다시 아이는 자습실로 행해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가 있던 그날 공중전화는 늦은 시간까지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캡사이신보다 매운맛 고등의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니 '아이도 성장하고 엄마도 성장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이 괜히 고등이 아니구나,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였구나. 그동안 난 중학생엄마 정도의 안목과 생각을 가지고 딱 그만큼만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살았구나. 난 이제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끼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가.


첫 매운맛에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정신을 차린 아이는 그날부터 마음가짐에 큰 변화가 생긴 듯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애만 정신을 차리는 게 아니라는 거. 그날 공중전화에 줄 서 있던 대부분의 친구들도 다 같이 정신을 차렸다는 것. 우리나라 입시는 상대평가라 우리 애가 정신 차려 공부해도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면 그 그룹 전체의 평균이 상승해 등급은 같다는 것. 여차하면 등급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 그러나 나는 엄마니까, "내 아이만 보자",  나 또한 성장했기에 아이의 숫자로 된 등급보다 아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장통을 겪으며 혼자 참아내고 이겨내며 애쓰고 있을 우리 아이가 눈에 밟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인형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스스로 직접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길과 방향을 찾아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엄마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어 보였습니다. 단지 그냥 옆에 있어주고 나중에 보라고 카톡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묵묵히 본인의 할 일을 했고 이제 수능을 단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K-고등맘으로 잘한 일은 무엇일까. 굳이 내 입으로 내 머리를 쓰담쓰담하며 자화자찬합니다. 바로 내 아이만 바라본 일입니다. 상대평가로 가득한 성적표를 그날부터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보긴 했지만 절대 얼굴에 그 무언가를 내색하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나 그동안 들어간 학원비가 얼만데'라고 본전 생각을 할게 아니라 상대평가 속 혼자 외롭게 애쓰고 있을 아이를 눈에 담고 그렸습니다. 또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를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록 다 같이 성장하고 있어 등급은 제자리여도 어제보다 성장한 아이가 보였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몇 년 뒤면 큰 어른으로 성장해 독립해 나가야 할 아이가 보였고 그 뒤에서 난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그렇게 하루아침에 마음먹은 대로 동전 뒤집듯 쉽게 뒤집혀질까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해도 한 순간에 저라는 사람이 확 바뀌진 않았습니다. 고3 엄마들은 물건이 땅에 떨어져도 떨어졌다 말하지 않습니다. 땅에 붙었다 하지. 고3 엄마들은 숫자 1일 제일 좋아합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는데 부동산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고 있는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어느 부동산 전화번호

 

"다 내려놨다더니, 내려놓긴 개뿔" 왜 이렇게 아직도 못 내려놓은 미련이 이리도 많은 걸까 속으로 자책합니다. 얼굴을 용안(容顔)이라고도 합니다. 이 얼굴 용(容) 자에 용서하다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진짜 용서한 사람의 얼굴에는 한치의 거리낌이 없이 다 얼굴에 그 기분 상태가 나타나서 얼굴 용, 용서할 용(容)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과연 나는 내 얼굴표정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자신 있게 큰소리가 처지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그렇게 숫자 1이 좋고 쉬는 날 절에 가서 시주하는 게 진짜 다 내려놓은 것이 맞는지 자문해 봅니다. 그저 아들에게만은 사심 가득한 속내를 들키지 않길 바랄 뿐인데 벌써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수능 후에 이 글을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에 내 감정이 드러날까 봐. '아직도 멀었구나'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 뿐. 그럼에도 항상 이 기도도 빼놓지 않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에 평안을 찾게 하시고 제 허영심뒤에 가려진 진짜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어른이 되도록 매일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십사" 말입니다.


어느 날 아들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걱정인형이자 다중인격 엄마의 감상 젖은 오글거리는 카톡글에도 괜찮아진다고 합니다. '아들이 용기가 나고 힘이 난다면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글로 오늘도 수능 D-100일 편지를 씁니다.


지나고 보니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겐 전부일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성적이 기대보다 못 미치면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전부인 부모에게 지지대신 지시만 받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어른의 말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고3인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오늘도 솥뚜껑 운전하며 '이노무 지겨운 밥'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얼굴 표정관리에 최선을 다할뿐. 예수님, 부처럼, 성모마리아님 우리 아들 많이 떨지 않게 해주시고 그 날은 특히 제가 표정관리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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