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 나 브랜딩의 딜레마
찬바람이 불 때면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붕어빵 냄새.
지나칠 수 없다. 밀가루도 좋고 팥도 좋고, 무엇보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붕어빵은 가성비 좋은 행복이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기다리는 동안 풍겨오는 냄새와 구워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는 그 자체로 소소한 즐거움이다.
붕어빵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작은 천막 안, 허름한 리어카 위에는 늘 비슷한 도구들이 있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밀가루 반죽, 단팥 통, 팥을 덜어내는 숟가락과 젓가락. 하지만 반죽의 묽기, 굽기의 정도, 팥의 으깸 정도에 따라 그 맛은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다.
어릴 적부터 붕어빵은 나에게 단순한 간식을 넘어 추억의 음식이었다. 종이봉투 속 붕어빵 하나를 꺼내 들고 호호 불며 먹던 그 따뜻함이 지금도 선명하다. 집까지 품에 안고 가져오면 습기로 약간 눅눅해진 붕어빵도 묘하게 쫄깃하고 맛있었다. 식어버린 피자나 치킨은 별로지만, 붕어빵은 차가워져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붕어빵이 변하기 시작했다. 길거리 간식의 대명사였던 붕어빵이 점점 ‘브랜딩’을 입고, 이름을 가지며 고급스러운 디저트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의 '프리미엄 붕어빵'은 개당 4000원, 팥 대신 치즈나 슈크림이 들어가면 5000원, 인기 초콜릿이 추가된 붕어빵은 5800원까지 올라간다. 붕어 모양이 아닌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뀌고, 버터리한 향과 함께 예쁜 상자에 담겨 나온다.
물론, 누군가 붕어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차별화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브랜딩을 했을 것이다. 새로운 재료와 비싼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하고, 더 큰 시장으로 붕어빵을 확장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붕어빵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도 아니다.
포장마차 앞에서 리어카 주인이 건네주던 따뜻한 붕어빵이 아니라, 그냥 '붕어빵을 닮은 또 다른 간식'일뿐이다.
붕어빵은 이름 없는 그대로가 좋다.
그 따뜻한 냄새와 소박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추억. 내가 사랑하는 붕어빵은 값싸고 익숙한 행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요즘은 브랜딩이 대세다.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만이 아니라, 이제는 나 자신을 브랜딩 하는 시대다. SNS에서 사람들은 화려한 사진과 짧은 글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초면에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또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매일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물론, 브랜딩은 중요한 기술이고, 그 과정에서 얻는 가치도 많다. 하지만 브랜딩은 어디까지나 나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내가 가진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다. 브랜딩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본질과 진정성을 놓치게 된다면 그것은 허울에 불과하다.
붕어빵이 아무리 화려한 이름과 고급스러운 포장을 입어도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붕어빵의 진정한 가치는 여전히 그 이름 없는 소박함 속에 있다. 사람도 그렇다. 브랜딩이 나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나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붕어빵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단순하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이려 애써도, 진정한 가치는 외형에 있지 않다는 것.
길거리에서 파는 소박한 붕어빵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그 따뜻함과 정겨움이었듯, 우리도 결국 진정한 가치는 내면에서 나온다.
붕어빵은 결국 붕어빵이다. 비싸든 저렴하든, 그 안에 담긴 따뜻함과 정이 붕어빵의 본질이다.
사람도 그렇다. 나를 포장하고, 브랜드처럼 꾸미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진정성과 온기를 잃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브랜딩은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한 가지 방법일 뿐,
나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진정한 가치는 내가 지닌 본질 속에 있다.
붕어빵처럼.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