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건
팔을 들어 슬픔을 받치고 선 모양.
나란한 두 개의 기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다.
그러니 팔이 아프면 조금 꾀를 부려도 좋아.
오늘은 나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겠다.
당분간은 내가 받치고 있을게.
손으로 안 되면 발로라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그러니까 다녀와.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숲길도 걷다 와,
기다릴게
_ 안희연 <단어의 집> 중에서
신혼 부부에겐 결혼 선배 같고
삼십 년 함께한 부부에겐 신혼 같은
우리, 십일주년.
헤어질 줄 알았지.
‘이게 될까?’ 싶었던 날이 없었겠어?
좋다고 만났는데
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
그냥 살다 보니
벌써 십일 년이 흘렀네, 싶었지.
그런데 아니더라.
내 손이 무거울 땐 당신이 들어주고,
당신 팔이 버거울 땐 내가 잠깐 받쳐주고.
우리 어깨가 무거운 날엔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주물러줘서
그렇게 흘러왔어, 십일 년을.
"안 변해, 안 변해. 아직도 몰라?"
가끔은 가시처럼 뱉어낸 말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변해 보려고,
알아가 보려고,
마음을 쥐어짜던 순간들이 있었지.
그걸 이제 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해.
서로를 위해 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자.
그 무게에 지쳐 주저앉지 말자.
그냥 각자
더 나은 사람이 되자.
가정 안에서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사람이 되자.
십일.
나란히 놓인 두 개의 하나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자.
그렇게, 같이 걷자.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