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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송 Dec 20. 2024

그럴 거면 글은 왜 써?

기록하는 이유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그럴 거면 글은 왜 써?”


그는 내 글을 읽고, 내가 쓴 내용과 달리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던진 말이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준 말이 되었다.


그날은 말투에 관한 글을 쓴 날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얼마나 상대의 마음에 닿는지 기록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도 그날 내 날카로운 말투는 그 글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남편의 질문은 그 점을 찌르고 있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잘 살기 위해 기록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록한다. 이 말은 곧 내가 지금 부족하다는 뜻이다. 완벽에서 조금 모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쓴다. 쓰면서 돌아보고, 쓰면서 다잡는 시간이 나를 채운다.


3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 멈출 때도 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한 줄이라도 기록했던 날들을 떠올리면, 꾸준히 이어져 온 습관이다. 기록은 나와의 대화이고, 나를 더 잘 알아가는 방법이었다. 내가 나를 더 잘 알아야, 타인과의 관계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내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과거를 반성하고, 수도 없이 미래를 다짐해 왔지만, 현재를 제대로 사는 일은 또 다른 과제였다. 결국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쓰며 글을 쓴다.


누구나 바라는 대로 완벽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림처럼 완벽하게 — 아니, 그림조차 완벽하지 않다 — 수학 공식처럼 정밀하게 살 수 있을까? 사실 내가 바라는 모습이 완벽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삶에 가까워지려면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록한다. 쥐어짜야 비슷한 삶의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는 글을 통해 드러난다.


기록하며 발견한 것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완벽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부족함을 견디며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글쓰기다. 글은 더 나은 삶을 향한 몸부림이며, 동시에 내가 나임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글이 없으면, 기록이 없으면 금세 잊는다. 잊고 돌아보지 못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럴 거면 글은 왜 써?”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글은 나를 위한 다짐이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내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 글만큼 확실한 도구는 없으니까.


부족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건반 밖 엄마,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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