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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송 Dec 25. 2024

산타는 오지 않았다

산타는 어디 있을까?

아이의 위시리스트가 성탄 이브에 갑자기 바뀌었다.


반려동물 또는 자연이 그려진 책갈피.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은 아이의 마음에 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수채화를 그리고 말려 코팅할 시간도 없었고, 길고양이를 찾아 나설 수도 없었다. 대신 깨어나면 물어볼 온갖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준비해 두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기를, 선물을 받는 기쁨으로 만족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잠들었다.




부스럭부스럭, 소곤소곤.


새벽 6시. 거실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이 트리 곁에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기뻐하는 웃음소리도, 선물을 들고 안방으로 뛰어오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소리가 멈췄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조심스레 돌아온 아이들은 나와 남편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잠결에 깬 척하며 물었다.


“오늘이 가장 행복하지 않은 크리스마스야. 산타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비한 변명은 소용없었다.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는 걸 깨닫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위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아이는 방을 나가버렸다. 평소처럼 기상한 나는 거실로 향했다.

  

“선물이 뭐야?”

돈.”

“돈?”

“응. 아무리 그래도 돈은 아니지. 내가 돈 받으면 못 쓰고 저금만 한다는 거 알면서.”


일주일 전, 아이는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적고 온 가족을 동원해 각각의 선물을 누가 줄지 정했다. 산타할아버지 옆엔 ‘돈’이 적혀 있었다. ‘엄마 허락 없이 내가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다이소에서 상자와 리본을 사 이쁘게 포장하고, 짧은 메모와 함께 놓아두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이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산타는 없는 것 같아.“

“엄마가 산타지?”


짧은 메모에서 내 글씨체를 발견하고, 포장지에 붙은 스티커가 우리 집에서 사용하던 것과 같다는 증거를 들이밀었다.

  

“엄마! 이거 엄마가 쓴 거지? 엄마가 산타 맞지?”


  

이제 아이들에게 더 이상 산타는 없는 걸까?

아니면, 원래도 없었던 산타가 각자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 내일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누군가의 집에는 들렀고, 우리 집에는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나누겠지. 산타는 누구에게 찾아오는 걸까?


  



얼마 전 아이가 물었다.


“엄마! 산타가 있어? 친구들은 없다고 해. 엄마가 산타래.”


그때 이미 답해주었었다.


“산타가 있다고 믿으면 있는 거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거야. 산타는 보이지 않지만, 믿는 사람에게만 찾아오거든.”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조금 전 아이가 말했다.


“산타는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엔 우리 집엔 오지 못한 것 같아. 우크라이나에 먼저 가야 해서…”


산타는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내게도 산타가 있었다.

어린 시절, 깊이 잠들지 못한 성탈절 이브.

살금살금 일어나 나와 동생의 머리맡에 과자를 한 아름 놓아두던 부모님.

그 산타는 그때도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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