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니지만 거창하게 적어보는
접수대 맞은편 대기석에 앉았다. 시선은 45도 아래 바닥을 향하며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
오니즈카 타이거가 접수대 앞에 선다.
'아, 저 신발 나도 갖고 싶었는데.'
스물너덧살에 본 일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신고 신나게 달렸던 그 신발이다.
오니즈카 타이거를 신으면 나도 그 여주인공에 빙의해 신나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운동화가 많은데 뭐.' 하면서도 매장을 지나칠 때면 꼭 들어가 한 번 들었다 놓아보던 그 신발이다.
오니즈카 타이거가 접수대를 떠나고 나이키 코르테즈가 앞에 섰다.
'아, 어느 유튜버가 저 신발이 코디하기 참 좋다고 그랬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1층 카페에서 사 온 마들렌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까눌레 포장지를 벗겼다.
아가 아침밥은 열심히 챙겨주고도 내 밥은 챙기지 못했던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한 시간째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한다. 섬유선종의 크기가 커졌는지 작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피부 표면으로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통증이 있어서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도 아니기에,
일 년 동안 내 몸 어딘가에 그런 불순물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잊고 지냈다.
질병이라 명칭하기도 민망하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 신체의 어떤 부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이 거듭 벌어지는데, 이 정도쯤은 별거 아니다.
족히 스무명은 넘는 사람들이 진료대기석에 앉아 있다. 스무가지의 표정과 스무가지의 다른 모습들. 그 사이에서 자그마한 섬유선종쯤 가지고 이런 대형병원에서 '나도 아프오. 진료받으러 왔소.'하기도 다방면 죄송스럽고 민망하다 생각한다. 그래도 내 발등의 불이 뜨겁다고, 검사 후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긴장되나 보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여러 생각과 기억들이 꼬리를 문다.
3년 전, 처음으로 섬유선종 판정을 받았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받았고, 대형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받았다. 그 때의 나는, 내 몸 안에 정체 모를 이물질이 있다는 것보다, 살갗을 째고 살점을 뜯어내는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채혈 바늘도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지금보다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상황'을 상상하며 그 짧은 몇 초를 버티는 사람이다. 티비 드라마에서 침을 놓는 장면도 못 본다. 바늘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고 무섭다. 그런 나에게 살점을 뜯어낼만한 굵은 바늘이라니. 머리가 아찔해졌다.(지금은 제왕절개도 겪은 늠름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껄껄.)
그맘때쯤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가한 동생을 대동해 건강검진 소견서를 들고 큰 병원을 찾았다. 티를 내진 않았어도 파르르 떨리도록 무서웠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칭얼댈 수는 없어서, 공포감에 비례하게 활짝 웃으며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대에 눕자, 조직 검사를 할 부위에 마취주사를 먼저 놓았다. 그때부터 이미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가 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내 피부를 찌르고자 대기하고 있는 그 대형(?) 주사기를 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떤 미스터리한 인력으로 혹은 공포감으로 외면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마취가 된 후에는 피부 표면을 살짝 째고 커다란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스스슥-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바늘의 현 주소지가 어렴풋하게만 느껴짐에도, 몸의 모든 감각은 그곳에만 집중되어 있다. 조직 채취를 하는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망치로 주사기를 때리는 듯한 '쾅쾅쾅' 소리와 함께 충격이 몇 차례 있었다. 주사기 바늘이 빠진 자리에는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테이프가 붙여졌다. 마취를 했으니 당연하게도 대단한 통증은 없었다. 바들바들 떨었던 시간이 무색했다.
검사실을 나서니 대기석에 동생과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걱정하실 테니 엄마에겐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멀리 지방 고향 집에 있어야 할 엄마가 눈앞에 나타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순간 긴장이 풀리며, 엄마 앞에서 나는 일곱 살 꼬맹이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는 3-4시간 시외버스를 타고 이제 막 도착했다며, 검사받느라 고생했다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동생은 3-4년 만에 엄마를 만난 참이었다. 엄마와 동생을 차에 태우고 내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삼계탕을 데워 좁은 좌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조직 검사에 대한 공포감은 어색한 분위기에 밀려 진작 사라졌었다.
엄마는 서른다섯에 섬유선종 제거 수술을 받았었다고 했다. 나도 그 즈음 같은 진단을 받았다.
남편에게 맡겨두고 온, 집에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10개월짜리 딸이 생각이 났다.
나는 요즘 육아에 몰두해 있고, 자그마한 나의 딸은 10개월째 내 삶에서 주인공으로 활개를 치는 중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된 딸을 상상해보았다. 진료를 기다리는 지금의 나보다 몇십 년 후의 딸이 먼저 걱정되었다.
그 즈음의 나는 제법 나이를 먹었을 텐데, 건강한 모습으로 삼계탕을 끓여둘 수 있으려나.
내가 너무 늦게 아이를 낳아, 내 아이는 너무 빨리 외로워질지도 모르겠구나.
동생이라도 얼른 만들어줘야겠다.
두서없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쓸렸다가, 얼른 고개 저어 잡스러운 생각들을 털어냈다.
대기한지 1시간 20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의사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진료는 1분여만에 끝났다.
"오른쪽은 깨끗하고, 왼쪽에 있던 것 중 작은 건 크기가 줄었네요. 우리 일 년 반 뒤에 보는 거 어때요?"
"좋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답하고 활짝 웃었다. 이 인자한 의사선생님에게 웃는 환자도 있어야지 싶은 오지랖에. 아이를 낳고 오지랖이 더 늘었다.
진료실을 나와 접수대 앞에 내 스탠스미스가 멈춰 섰다. 1년 반 뒤의 어느 금요일 오전에 진료를 예약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며 오디오북을 실컷 들을 수 있어 좋았는데. 기다리며 '특별한 건 없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고,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주책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아니야. 얼른 쏙 들어가! 지금 나올 타이밍이 아니야.'
주차장으로 내려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남편에게 이제 집으로 출발하노라고 카톡을 보냈다.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화면 너머에서 아가가 짧은 '엄마'를 여러 번 외친다.
엄마엄마엄마
응 엄마 이제 가. 조금만 기다려.
아가 이유식 데워서 먹일까요?
아니에요. 1시쯤 먹여도 되니까 내가 가서 먹일게요. 금방 가요.
엄마엄마엄마
응 알았어 엄마 얼른 갈게. 조금만 아빠랑 더 놀고 있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기가 엄마엄마엄마.
빠른 속도로 기어 와 내 품에 폭 안긴다.
바닥에 앉아 아가를 한참 껴안고 앉아 있으니 남편이 와서 나와 아기를 함께 안아준다.
잘 다녀왔어요? 병원에선 괜찮대요?
나는 남편에게 괜히 우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아가를 꼬옥 끌어안았다.
별별 생각을 두 시간 동안 참 많이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