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9 옷거리
연계전공 수업을 듣다가 깨달은 건 패션과는 다소 관계가 멀어 보이는? 고대에도 패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중 유독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마르지엘라의 컬렉션, 장폴고티에의 쿠튀르, 칼라거펠트의 샤넬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깊이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런 얘기라도 신나서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고대에 패션 관심 있는 친구들을 좀 더 모아보면 어떨까?’라는 얘기가 나왔다.
말이 나오기 무섭게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다섯 명의 친구들이 공강 시간마다 모여서 어떤 방식의, 형태의 모임을 만들면 좋을지, 리크루팅은 어떻게 할지, 모인 친구들과는 어떤 활동을 할지 얘기하고 적었다. 패션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밤늦게까지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고려대학교 첫 패션 비즈니스 & 커뮤니케이션 학회(설명도 길지..)의 이름은 “옷거리”. 나름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옷거리 : 옷을 입은 모양새를 뜻하는 순우리말
옷+거리(source) : 옷에 대해 생각하며 이야기하다
옷+거리(distance) : 옷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다
지금 보니 세 번째 뜻은 조금 억지스럽지만 무튼 옷거리의 첫 리크루팅을 앞두고 우리는 어떻게 이 처음 보는 학회를 홍보할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에 학교에는 각종 학회들이 창궐하던 시절이었다. 경쟁률이 5:1이 넘는 쟁쟁한 경영학회도 있었고, 외에도 나름 유서가 깊은 다양한 학회들이 각자의 경쟁력을 뽐내며 학기 초에는 이 학회들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빈틈없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완전 신생 학회였기 때문에 포스터부터 튀어야 했다. 어떻게 좀 더 디자인적으로 멋있게 만들까 고민고민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그냥 진짜 옷에다가 프린트를 하는 게 어때?” (내 기억엔 분명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은데 혹시 기억 조작이라면 알려줘..) 모두가 1초의 고민도 없이 동의했고, 아예 마네킹에 입혀서 전시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티셔츠 포스터”는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첫 리크루팅, 8: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며 옷거리는 성공적으로 론칭했다.